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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의료계가 위헌 소송까지 불사하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전산화 시스템 구축과 전문중계기관(전송대행기관) 선정에 따른 이해관계 조율도 과제로 남아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살펴보자. <편집자 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실손의료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재석 225명에 찬성 205명, 반대 6명, 기권 14명으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보험소비자는 실손보험 청구시, 일일이 서류를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에서 발급받아, 서면으로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행 이후에는 소비자가 요청하면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에서 보험금 청구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방식으로 전송 가능하다. 보험금 청구 절차가 불편하다 보니 병원비가 소액인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금융위원회(금융위)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는 2022년 말 기준 약 4000만명에 이른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일일이 서류를 발급받아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등 보험금 청구 절차가 복잡해 청구를 포기한 금액이 연간 3000억 원(추정)에 이른다.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이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 통계를 활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2512억원으로 추정된다. 과거 지급된 보험금을 기초로 추정해 보면, 올해 지급되는 보험금은 13조3500억원, 미지급 보험금은 3011억원 규모로 예상된다.
청구 절차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법 개정을 권고했다. 금융위는 국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실손보험 청구 절차 전산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테스크포스(TF) 운영과 이해관계자 협의체 구성 등을 진행했으나, 의료계 반발과 의료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개정안은 14년간 표류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소비자는 일일이 보험금 청구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대신 요양기관에 요청하면 된다. 청구 전산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운영 의무는 보험회사에 부여하고, 시스템 구축 비용도 보험회사가 부담한다. 전송대행기관은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들 기관이 의료 자료를 목적 외에 사용·보관하거나 누설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 원 이하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개정안은 내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 약국 등에 대해서는 2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따라서 보험업계는 실질적으로 오는 2025년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전면 도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장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전송대행기관 선정에 착수했다. 전송대행기관은 병의원·약국 9만8000곳과 보험사 30곳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3일 금융감독원,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소비자단체와 함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 회의를 개최했다.
▲과제는 어떻게 풀까= 숙원사업이 해결됐다지만 과제가 남았다. 내년 10월부터 실손 청구 간소화 제도가 본격 시행될 예정인데 개인정보 유출과 보험사의 보험금 미지급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7일 국민동의청원에 따르면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관한 청원'은 지난 5일 5만명의 국민동의를 받았다. 해당 청원서는 지난 6일 소관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로 전달됐다. 청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 준비 단계에 들어갔지만, 여러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원인은 "환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지적이 있어 왔다"며 보험사가 가입자(환자)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의료 민영화의 수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의료계가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은 물론 최악의 경우 보험사에 정보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 보이콧까지 불사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지난 6일 성명에서 보험사의 이익만을 위해 법안 심의를 강행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보험개발원을 제외한 다른 기관으로 전송대행기관을 정하고, 전자적 전송 방식을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 등의 지원 방안을 구체화할 것을 요구했다. 전송방식을 의료기관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요양기관에 제기될 수 있는 보험금 미지급 등에 따른 환자의 민원 방지책을 마련할 것도 촉구했다. 협회는 이 같은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모든 보건의약 종사자들이 보험사에 정보를 전송하지 않는 보이콧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별도의 법률 검토를 마치고 개정안에 대한 위헌 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뿐 아니라 일각에서 의료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자별로 질병 정보가 축적돼 추후 보험사의 마케팅 등에 이용될 수 있고,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해서 받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회·한국폐섬유화환우회·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도 공동성명을 내고 보험업법 개정안이 민간 보험사의 환자 정보 약탈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중증질환자들의 보험금 지급 거절이 빈번할 수 있고 개인 의료정보를 수집·축적하는 개인의료정보의 유출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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