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1월 2일(목요일) 아내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했던 아산에 있는 곡교천의 은행나무 숲길을 걷고 싶다고 한 것을 같이 가보기로 했다. 아내의 나이가 60을 넘었어도 아직도 소녀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필자도 정년퇴직을 하고나서 5년이 넘어서인지 외롭고 쓸쓸함이 밀려오고 일을 하지 않아 무기력감에 빠진 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당직에 지원하여 지난 9월부터 긴장감에 일할 수 있다는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이틀에 한 번씩 근무를 하고 있다. 당직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오자마자 아내가 간단하게 준비한 간식거리를 챙겨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출근 시간이 아닌데도 대전나들목(IC)까지 가는데 4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특히나, 홍도지하 차도부터 용전동 사거리까지가 교통신호체계 때문인지 차량이 그대로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대전ic로 진입하면서부터는 교통 흐름이 원활하여 고속도로변 옆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가을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황금물결을 이루었던 농촌의 들녘은 지금은 덩그러니 사료로 쓰기 위해 하얀 비닐로 감겨진 커다란 볏짚 뭉치만이 대신하고 있었다.
한 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아산의 곡교천의 은행나무길 근처에 도착 했다. 평일인데도 은행나무에 달려있는 은행잎들의 노란 자태를 구경하기 위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근처에 주차 안내 표지판이 보이질 않아 주차할 곳을 몰라 잠시 헤맸다. 눈에 보이는 충청남도경제연구원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아내와 같이 은행나무 길로 갔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은 떨어진 은행 알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은행나무 길은 약2km로 곡교천의 제방에 두 줄로 심어놓은 가로수인 은행나무가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여 노란 자태를 자랑하며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곡교천변에는 국화와 수국 등 여러 가지 가을꽃들이 피어 10월 하순 축제를 열었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려준다.
막상 아내와 같이 걸으면서 은행나무 잎들을 바라보니 아직도 노랗게 물들지 않은 은행들이 많아 다음 주는 되어야 절정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내와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주변의 경치도 감상하면서 싱그러운 가을의 경치를 감상하다보니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것 같다. 떨어진 작은 은행잎들을 모아 공중으로 던지면서 함박웃음을 짓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는 연인들을 유혹하는 카페들이 많아 커피와 간단한 빵 종류를 마시고 먹으면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은행냄새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다시금 느껴본다.
아내와 함께 가을을 즐기며 |
무더위가 모든 것을 바뀌게 한 것 같아 쓸쓸함을 앉고 다음의 목적지인 천안의 상징인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을 하려고 주차장의 그늘진 공터에서 가져온 간이 도시락을 펼쳤다. 단감과 사과 그리고 주먹밥이 전부였지만, 아내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라 꿀맛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영원불멸의 민족기상을 표현하고 민족의 자주와 자립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겨레의 탑과 독립기념관의 대표 상징 건물인 겨레의 집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 부부를 반기고 있는 것 같다. 독립기념관의 전경을 둘러보는 태극열차가 운행을 한다기에 표를 사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눈앞에 다가와 멈춘다.
장난감 같은 3량의 열차로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일곱 살 손주와 함께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열차 안은 단체로 관람온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열차는 천천히 겨레의 탑을 출발하여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도록 하면서 10여분 만에 겨레의 집 근처에 도착하였다. 근처에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관람객들 틈에 끼어 겨레의 집을 지나 제1전시관부터 제6전시관까지 독립운동의 발자취와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정부패와 국론분열과 무능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하니 필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힘이 없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로 인해 힘없는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것을 볼 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화합과 강력한 국가의 힘을 길러야겠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여기서는 정치얘기는 하지 않겠다.
독립기념관의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근처에 있는 단풍나무 숲길을 찾아갔다. 단풍나무 숲길의 목적은 독립기념관 주변 화재 시 산불진화를 위한 소방도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숲길은 3.2km로 1,2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장관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어난다.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에는 전시해 놓은 국화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단풍나무 숲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숲길은 포장된 곳으로 마사토나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걸을 수 있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계속 올라가다보니 포토존이 있어 아내와 번갈아가며 사진도 찍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포토존 근처의 나무들이 조명이 들어오게 해 야간 개장 시 삶들을 유혹하게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무들도 밤에는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단풍이 이상하게 생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현상을 거스르면 재앙(災殃)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올라갈수록 단풍의 색깔이 아직도 초록빛이 많아 절정을 이루려면 10일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중간에서 발길을 돌렸다.
초입에 놓여있는 국화를 배경으로 아내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인 '국화 옆에서'의 싯귀가 머릿속을 스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솟작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섬세한 표현의 글이 오늘 아내와 함께한 은행나무길이나 단풍나무 숲길에 놓인 국화를 보니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40주년이 지났다. 자연을 벗 삼아 가을의 상징인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따라 부부가 함께 여행을 통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계기가 되는데 작은 보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덕천 염재균/수필가
염재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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