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환 한남대 링크3.0사업단장 및 캠퍼스혁신파크선도사업단장 |
멍청비용은 개인의 문제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비용 발생인데, 애교로 넘어갈 수도 있을 듯하다. 자신에 대한 실망은 조금 있겠지만. '그럴 수 있어'라고 위로도 해가면서 말이다.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반성의 귀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멍청비용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가 화재를 발생시키거나 하수구를 막을 수 있고, 가스 관리의 부주의가 내 이웃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산불이 될 수도 있다.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는 나쁜 바이러스의 온상지가 될 수 있고, 내 차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 애교로 봐 주기에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북극 곰의 눈물은 우리 개인들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사회적 손실비용이다. 미래 세대로 갈수록 사회적 대가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세대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남을 해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사회적 백신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부주의해서 의도치 않게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관계 속에서 올바른 정보가 취약할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부주의한 집단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발생한다는 것을 모르고 선택한다. 잘못된 사회적 선택이 얼마나 큰 부메랑이 될지는 선택 내용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확실한 것은 사회적 멍청비용은 개인적 멍청비용에 비해 무조건 크다는 점이다. 집단 선택의 부주의함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 선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계층도 있을 수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면 말이다. 올바른 정보를 주지 않거나 정보를 왜곡하여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집단의 부주의한 선택을 유도해 이익이 된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자신들만의 이익이 영속된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빅 브라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선택 비용은 고스란히 모든 구성원들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사회적 멍청비용은 단순한 실수이거나 추억이 될 수 없다.
정보가 넘치는 것을 넘어서 정보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회사의 면접도, 기업의 마케팅도, 학교의 교육도, 정부의 정책에서도 AI가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그릇된 정보가 입력되어 사회를 지배한다고 가정해 보자. 참으로 아찔하다. 정보가 독점되지 않을 사회적 의무와 올바른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사회적 멍청비용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정보와 객관적 판단, 합리적 행동이 요구된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사회에 공존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옳은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및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그릇된 정보가 확산되거나 그 자체를 유도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예방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우리와 미래 세대의 사회적 멍청비용이 제로(0)가 될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원구환 한남대 링크3.0사업단장 및 캠퍼스혁신파크선도사업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