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김소월의 시에 곡을 얻은 <부모>라는 이 노래는 1969년에 발매되었다. 자장가처럼 어머니 입에서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던 어린아이가 부모가 되었고, 이제 시집 보내야 할 딸을 두고 있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삶은 이어지고, 또한 우리는 어쩌다 생겨나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마치 어른들을 위한 철학적 동시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속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해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의 입술을 말없이 지켜보는….
기억의 창밖에서 나는 어머니와 어린 나를 바라보며 이 둘은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으로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싶다.
우리 민담에는 아기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 설화가 있다.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명부의 세계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삼신할머니가 있을지 모른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계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카르마(업보)라는 시스템이 있어 삼신(영혼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민간신앙으로 믿어왔다. 과학계에서 이 문제는 '오컴의 면도날'과 같아서 증명할 수 없는 문제는 논제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과학적 발견으로 본다면 인간은 분자 덩어리이고, 원소의 결합이 만들어낸 생물체일 것이다. 최근의 홀로그램 우주가설에선 우리는 그저 실체가 모호한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과학의 영향을 받은 서양철학은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실존적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삼신은 분리되고 오직 증명 가능한 육체 기능만이 논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우리가 노쇠화되어가는 기계이거나 홀로그램 정보체라고 생각한다면 허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양에는 아직도 삼신사상이 강하다. 영혼과 육체가 혼줄로 연결되어 있고, 영혼의 세계, 명부에서는 조상의 음덕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는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조상을 기리고, 그 음덕을 받고자 한다. 한마디로 제례문화 내지 축제를 통해 삶의 순환성과 연속성을 되찾고자 했다. 조상은 섬기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조상이 되는 연속성 상의 하나인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것을 마치 붉은 실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인드라망인 것이다.
나는 한때 종교적인 이유로 부모에게 제사지내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종교적 이유를 떠나서 제사라는 형식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청수를 한 그릇 떠놓고 기도를 한다. 부모와 조부모와 그 위의 조상줄을 타고 내려와 어쩌다 생겨나서 그 음덕을 기원하는 실존적 존재로서 말이다.
내가 붉은 실로 연결된 딸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너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야. 조상신이 돌보고, 나도 조상신이 된다면 너를 돌볼 거야. 넌 우리의 미래이고, 최고의 조상이지. 그러니 가슴을 펴고 세상을 축제처럼 즐기기를….'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귓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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