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영 이사 |
이 사고로 많은 사람이 실험실 안전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고 연구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KAIST 구성원들은 정치권에 연구실 안전 대책을 강력히 요구해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정부의 연구 안전 예산이 꾸준히 확충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연구실 안전예산이 33억원(24%)이나 삭감되고, 연구실 안전사고가 크게 증가했음이 밝혀졌다. 최근 6년간 연구실 안전사고로 총 1565명의 연구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도 연구실 안전환경구축 예산을 2022년 135억원, 2023년 118억원, 2024년 102억원으로 2년간 33억원 넘게 줄였다.
거기에 환경개선 지원 대상을 올해 32개 기관에서 2024년 9개 기관으로 대폭 축소시켰다는 것도 밝혀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말 한마디에 이제는 연구자들까지 위험한 환경으로 내몰고 국가의 귀한 과학기술 인재를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올해 1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선포식에 참석해 "우리 연구자들이 혁신적인 연구에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인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며 과학기술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렇다면 우선, 혁신적 도전을 위한 실험실 안전부터 구축하는 것이 순서다. 정작 실험실 안전 예산은 삭감해놓고, 혁신적 도전을 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과학자들이 혁신적 연구를 하다가 죽고 다쳐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번 연구실 안전 예산 삭감은 윤석열 대통령인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5조 2천억 삭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후보 때 "임기 중에 재정 R&D 예산을 크게 늘려갈 것",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 것과 완전히 배치되게 예산을 16%나 삭감해서 과학기술자들과 국민의 분노를 샀다.
심지어 올해 6월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전쟁'이라고 외쳐놓고 반도체 R&D 예산을 최대 84%까지 삭감했다.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해놓고,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최대 15% 감액해 카이스트 총학생회에서 규탄성명을 내기도 했다.
또한 '말로만 지방을 외치지 않겠다'라고 해놓고는 지방 균형발전특별회계 R&D 예산 67%, 지방혁신클러스터 예산 64%를 삭감했으며 '민생안전'을 강조해놓고는 재난안전 R&D 예산을 마구잡이로 삭감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주장한 대로 "R&D 다운 R&D에 재정을 쓰고 싶다"면 연구예산 배정과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면 된다. 무조건 예산을 삭감한다고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예산부터 깎으면서 시스템 바꾸라고 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
우리 대전에는 과학기술자들과 그 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 가족이 연구를 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일을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진실로 과학자들과 국민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다면 대통령은 실험실 안전 예산부터 증액해야 한다. 그리고 R&D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면 R&D 예산부터 복구하는 것이 순서다. 무작정 예산을 깎는다고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국민은 예산을 줄여 이공계의 희망을 꺾는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광영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