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이 넘은 할머니가 한글을 터득하고, 숫자와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며 부르짖던 환호성이다.
한글을 몰라 까막눈으로 살던 할머니가 밤잠 못 자고 어렵게 공부하여 한글을 터득하신 결과이다.
그 동안 한글을 몰라 온갖 수모에 한 맺힌 설움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살던 할머니임에 틀림없다.
나는 4년 전 마중물의 삶으로 대전 YWCA에서 할머니들 문해교육에 봉사한 적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바로 그 때의 이야기이다.
83세의 늦깎이 연세로 한글 공부를 해서, 쓰고 읽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흐뭇하셨겠는가!
눈을 뜨고 살지만, 목불식정(目不識丁)으로 사시던 노파였으니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광명의 세계가 얼마나 그리웠으랴!
나는 지난 화요일 한국효문화진흥원 전시관 봉사 차원 안내 해설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관람객 중에 산수(傘壽)가 훨씬 넘어 보이는 노파 한 분을 만났다. 그 분을 보는 순간
4년 전 문해교육을 할 때의 박진순 할머니가 떠올랐다. 노파의 연세가 박진순 할머니와 거의 비슷한 연배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여든이 넘은 그 연세에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고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시던 인상적인 모습이 꿈틀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제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박진순 할머니의 편지글 만큼 감명적인 글은 없었다. 83세의 만학도가 쓴 편지는 삐뚤빼뚤 줄도 안 맞고 맞춤법 철자법이 잘 못 된 곳도 여러 군데 있었지만, 내용만은 진실하여 가슴 뭉클했기에 그 편지글을 소개해 본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까막눈으로 살아온 날이 용하게만 생각됨니다. 글자를 모르니 어디 나설 수도, 누구네 집을 방문할 수도 업섰슴니다. 눈 뜬 장님 까막눈이라 버스를 제대로 타고내릴 수 없어,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씀니다. 그 한과 가슴에 맺힌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업섰씀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저에게 한글 눈을 뜨게 해 주시어 감사함니다. 암흑 속에 살던 장님이 광명세상을 보게 된 거 같아 너무 감사함니다. 선생님 고맙씀니다.
내 나이 83살. 평생 지금처럼 나 자신을 위하여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될까 생각도 해 봅니다. 저는 지금 한글학교 학생으로 책가방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 즐겁씀니다. 저녁에는 얘기책도 읽고, 시장에 다닐 때도 맘 놓고 버스 행선지를 보고 탈 수도 이씀니다. 학교에서 좋은 말씀도 듣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얘기도 나눌 수 있어 더욱 즐겁씀니다. 선생님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 주실 때면 답답하기만 했던 귀가 뚤리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께서 열성으로 가르쳐 주시고 경녀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제는 눈으로 모든 글자를 일글 수 있고 쓸 수 있어 마음까지 발가져 웃으며 살고 있씀니다.
숙제가 만은 날은 눈꺼풀을 비비면서도 그저 즐겁기만 함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까지 응원군으로 힘이 돼 주어 고맙씀니다.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 하느냐고 투정하고 불편하게 했다면 공부 시작도 못했을 텐데 그러지 안아 자식들이 그냥 고맙끼만 함니다.
늘그니가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선생님께서 한글도, 구구단도 가르쳐 주시고, 은행에 가서 청구서 써서 돈 찾는 법도 가르쳐 주셔서 그저 고맙기만 함니다.
까막눈이었던 늘그니가 선생님 덕분에 한글 깨우쳐 광명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엇씀니다. 그 바람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엇씀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할아범도 이런 내 모습을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즐거워할 것임니다. 선생님 고맙씀니다. 늘거서도 발근 눈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시어 정말 고맙씀니다. 2016년 7월 7일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 올림』
박** 할머니가 한글을 터득하고 맨 처음 쓰신 편지이다.
문해교욱을 받을 때의 연세가 83세였으니 현재 연세는 87세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내 전화를 받고 한참이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어리둥절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2년 전만 해도 자주는 아니지만 전화를 드리면, "아이구, 남 선생님!" 하시며 전화를 반갑게 받으시던 어른이셨다.
그런데, 지금은 잘 알아듣지도 못 하시는 데다가 말까지 어둔하시다. 게다가 바로 반응을 보이지 못하시고 한참 있다가 "누구슈? 난 모르는 사람인디 누구슈 ? > 하시는 거였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박** 할머니는 83세에 늦깎이 공부로 한글을 깨치셨다. 글 모르는 한과 설움 견디다 못해 밤잠 설쳐가며 진력(盡力)하여 한글을 터득하셨다. 정상 가정의 보통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 터득하는 한글을 83세의 연세에 겨우 눈이 터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게 있게 된 것이었다.
늦깎이 공부로 터득한 한글이 노파를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게 만들던 날이 불과 4년 전이다.
헌대, 그 할머니는 현재 87세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거기다 치매기까지 곁들인 거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글 터득의 기쁨과 환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인생 일장춘몽이라더니 한글을 깨치자마자 건강 악화에 치매기까지 있다 하니 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숙맥불변 면하고 광명세계에서 살아보려 했는데, 저승길 걱정이라니 인생고해는 다 이렇다던가?
제발 제발 천사 같은 할머니,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어로불변(魚魯不辨), 어렵게 면했으니 고진감래가 그 열매 되어 치매 걱정 없이 살게 하소서.
산수(傘壽) 지나 깨친 한글 설레는 기쁨에 대흥동 가는 버스 번호도, 간판 글씨도 읽을 수 있다고 좋아하던 그 어린애 마음이 무병장수로 이어지게 해 주소서.
노선버스 번호도, 간판 글씨도 읽을 수 있어요!
왜 이리 미어지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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