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모래의 역습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모래의 역습

이성만 배재대 교수

  • 승인 2023-10-30 10:28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이성만 교수
이성만 배재대 교수
기성세대에게 '모래'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지 물어보면 예외 없이 드라마 <모래시계>라고 할 테다. 그런데 해수욕장, 어린이 놀이터, 건축 현장 등과 같은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모래다.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고 파도가 해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그림을 그리며 언제든지 우리는 해변으로 달려간다. 한여름을 넘어 완연한 가을에도 즐기고 싶은 휴가 여행지로 금빛 해변을 찾는 게 꿈이자 현실이다. 가까이는 대천, 멀리는 해운대의 그곳 풍경을 빗댄 이런 시적인 표현도 더 이상 당연한 현실이 아닐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안도 눈에 띄게 과거의 자연스런 풍광을 잃어가고 있다. 잃어가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모래 고갈 때문이라고들 한다. 국토를 아파트로 채우다시피 한 우리네 주거환경만 보더라도 그 원자재가 모래와 자갈이다. 레미콘, 콘크리트 블록, 벽돌, 아스팔트, 시멘트 등 건설 관련 핵심 자재가 모래다. 모래가 콘크리트 재료의 70%나 된다. 그런데 이 많은 모래는 어디서 추출하는 것일까. 강? 바다? 아니면 산? 아무튼 모래와 자갈의 전 세계 연간 소비량은 400억 톤이 넘는다고 한다. 모래는 건설 분야의 독점물이 아니다. 산업분야에 필요한 것이 규사로 불리는 석영 모래다. 고부가가치의 유리, 플라스틱 또는 화학 산업에 중요한 자재다. 이게 태양 전지나 전자 제품 생산에는 불필요하지만, 이들 생산에 필요한 실리콘 원료가 바로 석영 모래다. 이처럼 모래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긴요한 주요 자연 자원이다. 그렇다면 모래는 무한 공급이 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수세기는 아니라도 수십 년은 가능하다고 본다. 모래와 자갈에 크게 의존하는 건설업에는 기쁜 소식이겠다. 물론 건설업이 모래와 자갈의 생산을 중단하면 경제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중국의 남중국해 사랑(?)은 전략적이다. 드러내는 것은 석유 자원 채취와 해상 안보 확보이지만, 감춰진 것은 모래 채굴이다. 중국의 위태로운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안정적이고 값싼 모래 수급은 안보 이익에도 필수다. 현대의 고품격 주택과 도로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려면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 바로 모래다. 세계 어디서나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은 초스피드로 도시화가 진행된 나라답게 모래도 최대 소비국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같은 도시는 사막 모래가 건축에는 무용지물이라 매년 수천 톤의 모래를 수입한다. 일부는 인도와 호주에서 선박으로 가져온다. 근래에 사막 모래에서 폴리머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기는 하였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모래 고갈은 생태계에도 위협적이다. 중국의 주요 모래 채굴지 중 하나가 장시성 북부의 포양 호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어종도 풍부한 생태계였지만, 모래 채굴로 그 많던 철새는 떠나고 양쯔 강 고유의 돌고래마저 멸종 위기를 맞았다. 베트남의 메콩 삼각주는 매년 5000여만 톤의 모래 채굴로 침식되어 금세기 말에는 삼각주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판이다. 싱가포르가 이웃 나라, 특히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에서 모래를 실어 날랐더니 이미 20개 이상의 섬이 사라졌다. 그제야 2007년부터 싱가포르에 모래 공급을 중단했다. 비슷한 현상이 아프리카 해안에서도 진행 중이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자치령 잔지바르에서는 대륙의 건설 프로젝트에 모래를 공급하면서 지상낙원 같은 해변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화는 막을 수 없지만, 모래 고갈을 막지 못하면 황금빛 해변도, 건강한 식탁도, 따뜻한 주택도 사라질 것이다. 모래에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과소비 방지, 재활용 노력, 사막 모래 활용, 대체 소재 개발 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모래의 역습으로 신음할지도 모른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