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지금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에서 비롯된 분열의 시대에 놓여 있거니와 더 나아가 분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는 그 양상이 점점 심화하고고 있지만, 후자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다. 한때 분단의 극복이니 통일의 시대니 하는 담론들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져 나간 적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이 시대의 당면 과제로 받아들여지면서 조만간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한때의 유행에 그친 감이 없지 않고, 이제는 대중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경우와 좋은 대비가 된다. 예전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간 적이 있다. 역사 도시답게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자리라든가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곳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인물들, 가령,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이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기념관 등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링컨기념관이다. 16대 대통령에 오른 링컨의 업적은 대단히 많다. 민주주의를 향한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이라든가 노예 해방, 남북 전쟁에서의 승리 등등이 그 본보기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미국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가 연방파였다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인들이 링컨에게서 들은 것은 승자의 나팔소리 만이 아니었다. 그는 연방을 지지했고, 이를 위해 노력했으며 궁극에는 이를 지켜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든 토대가 되었는데, 만약 링컨의 연방파가 비연방파에 패했다면, 현재의 팍스아메리카나(大美國, Pax Americana)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전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 세계 최강의 미국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자신들만의 이기주의에 빠져서 미국의 분열을 조장했던 남부의 인사들, 특히 분열파인 남부의 초대 대통령인 제퍼슨 데이비스 등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민족 소멸 단계의 초입에 서 있기도 하고, 극심한 진영 논리로 우리 국민은 이리저리 갈라져 있다. 표를 많이 얻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책 등이 아니라 감정이 실린 진영 논리만큼 좋은 수단도 없을 것이다. 이 시대에 그것처럼 손쉬운 득표 활동이 있을까.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에 쉽게 휘말려 들어가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남북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도 분열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 상황이다.
언제가 한반도는 통일이라는 대업의 시대를 분명 맞이할 것이다. 202X년, 20XX년, 2XXX년이 될 터인데, 만약 그 시대가 도래한다면 2XXX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통일은 팍스 코리아나, 곧 대한국(大韓國)의 시대가 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진영 논리를 전파하며 국민을 갈라치고 증오의 정서를 전파한 사람들을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갈등을 봉합시키고 팍스 코리아나의 초석을 세운 사람들에 가치를 둘 것인가. 2XXX년의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분단을 막고 통일 정부를 위해 애쓴 백범 김구를, 분단을 넘기 위해 햇볕 정책을 신념으로 펼쳐나간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소 떼 수백 마리를 데리고 북으로 간 정주영 현대 회장도 알 것이다. 그리고 갈등보다는 평화를, 분열보다는 통합을, 복수보다는 용서를 위해 살다간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을 그들은 역사 영웅으로 또한 기억할 것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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