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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음보살좌상을 1330년 처음 봉안했던 서산 부석사는 오랜 소송을 통해 불상의 주체이자 오랜 전통성을 인정받게 됐다. |
서산 부석사에 1330년 최초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우리 대법원의 선고를 계기로 일본으로 반환될 예정인 가운데, 지난 11년간 진행된 왜구 약탈 정황의 우리 문화재 환수 소송을 통해 거둔 성과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국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뒤늦게 인지해 환수할 때 법률적 한계가 확인된 만큼 별도의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국외소재문화유산 법률안' 제정 필요성이 높아졌다.
고려때 제작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대법원의 선고 내용처럼 소유권은 일본 쓰시마(대마도)의 사찰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 있더라도, 불상은 쓰시마 불상이 아닌 '서산 부석사 불상'으로 명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고려 때 왜구의 약탈에 의해 불상이 일본으로 옮겨졌을 정황에 대해 대법원에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유체동산인도 사건의 선고를 통해 이 사건의 불상에 대한 일본 간논지의 자주점유의 추정이 번복되지 않음을 설명하는 맥락이더라도 "불상이 고려 시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을 상당한 개연성"을 선고문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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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안이었으나, 간척되면서 지금은 너른 들판을 마주하고 있다. |
특히, 불상을 부석사에 반환하라는 1심 선고에 불복해 검찰이 '불상이 고려 때 제작된 진품임이 확인되지 않았다'거나, '고려 때 부석사와 지금의 부석사가 동일한 주체인지 입증되지 않았다'는 최초의 항소 이유는 모두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2017년 1월 유체동산인도 소송의 항소를 제기할 때 불상이 가품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2021년 9월 항소심 8번째 변론기일 때 스스로 철회할 때까지 5년이 소요됐다. 대법원 고려 때 서주 부석사와 지금의 서산 부석사가 실체를 유지한 채 존속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사찰의 역사적 연속성을 인정받고 불상의 주체임을 재확인했다. 대법원 1부는 "서주 부석사가 중창, 중수 등으로 사찰재산 등이 일부 변경된 사정만이 인정될 뿐 도중에 사찰의 인적요소인 승려 등의 계속성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물적 요소인 종교시설 등이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볼 만한 자료는 없다"고 선고했다. 다만, 일본 쓰시마 간논지 측이 2021년 11월 보조참가인으로 유체동산인도 공판에 참여해 제기한 준거법으로 일본 민법 적용과 시효취득 주장이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인용되면서 서산 부석사는 불상의 소유권을 잃게 됐다.
이상근 (재)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불교계가 일본 불교계에 협조 요청을 하는 등 종교·문화·외교적 방식으로 환수할 길은 아직 남아 있다"며 "국가문화유산기본법에 국외소재 문화유산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는데 국회에 계류 중인 '국외소재문화유산의 보호 및 환수·활용에 관한 법률안' 제정이 더욱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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