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시인 |
그동안 나는 충남 지역의 동학농민혁명과 관해서는 공주의 우금치 전투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번 탐방에 참여하며 충남 서해안 지역, 특히 태안 지역에 매우 큰 규모의 동학농민 봉기가 있었고, 그 과정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태안의 백화산 아래에 '갑오동학혁명군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이 백화산이 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군의 마지막 항쟁 터였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백화산 아래에는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도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부터는 '유족회'의 문영식 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탐방'을 할 수 있었다. 문영식 선생의 설명은 부친인 문원덕 선생과 더불어 자신이 앞장서온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한 추모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만큼 그의 설명은 아주 생생하고 절절했는데, 나로서는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는 했다.
스마트폰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2021년 10월 22일이었다. 가세로 태안군수가 중심이 되어 개관식이 치러졌는데,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이 기념관은 충남에서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은 전국의 지자체로서도 3번째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라고도 했다.
이 기념관에는 당연히 태안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었다. 내게는 그 설명이 왠지 소략해 보였다. 태안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좀 더 일목요연한 서사가 궁금했다. 기념관에는 서산 지곡면의 최형순이 최초로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만나 동학사상을 전수받았다는 내용도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태안의 대부분 동학 교도들은 이 지역의 대접주였던 상암 박희인으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아 교리를 터득한 듯했다. 이러한 정도의 내용만으로는 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모를 바로 알기가 어려웠다. 기념관 측에 '태안동학농민혁명'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소책자가 없느냐고 물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만 했다.
곧이어 우리 일행은 최초의 '태안동학농민혁명기포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곳의 공식적인 행정지명은 태안군 원북면 방갈리였다. 지금은 이 지역이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안에 자리해 있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그곳을 둘러보는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이런저런 절차를 거친 뒤라야 태안 최초의 기포지인 이곳에 세운 기념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커다란 오석으로 세운 이 기념비에는 '東學農民革命起包地(동학농민혁명기포지)'라는 한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아직 세월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았는데, 이곳에 예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2015년 5월 22일의 일이었다.
이어지는 '탐방'의 현장은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였다. 옥파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동학을 대표한 33인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동안 이종일 선생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다소라도 알게 되어 좋았다. 이종일 선생은 조선 말의 문신으로, 개혁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국문학자였다. 3·1 운동 당시 자신이 대표로 있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문 3만 5000부를 직접 인쇄한 분이기도 했다.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를 둘러본 일행은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귀가하는 길에도 나는 다시 한번 시천주, 인내천, 사인여천, 경인, 경물, 경천, 이천식천, 불연기연 등 동학의 기본정신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모시고 섬기는 삶에 대해서도 거듭 되물어보았다.
/이은봉(시인·광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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