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필 교수 |
재정절벽이라는 말이 본래 세금 인상과 정부 지출 감소라는 두 가지 때문에 생긴 용어라면 현재 우리나라 지자체가 겪고 있는 재정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 중앙이나 지방정부가 겪는 재정위기는 세금인상이 아니라 오히려 세금 인하, 즉 감세와 아울러 경기불황이 겹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절벽'이라는 용어는 부적절하고 오히려 단순하게 '재정위기(fiscal crisis)'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지자체 재정위기의 출발은 우선 최근에 표면화된 세수 결손 문제다. 세금이 안 걷히고 있다. 세금 걷는 일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9월 19일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을 발표했는데, 올해 세금 수입이 당초 추계액보다 무려 59조 1000억 원 가량 덜 걷혔다고 공개했다. 예상되었던 세수 400조 5000억 원보다 무려 14.8%나 덜 걷힌 것이다. 이는 중앙의 재정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자체에는 더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규모 공약사업을 추진하려는 민선 8기 대전시정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시도 당장 금년도에 1947억 7200만 원 정도의 교부금과 보조금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는 자주재원 대비 4.39% 정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그 비중이 5대 광역시 중 울산시의 4.86% 다음으로 크다.
중앙에서 오는 재원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직접 걷는 지방세에서도 상당한 결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시의 경우 등록면허세와 자동차세를 일시 납부하는 1월의 경우 전년 같은 대비 -0.5%였으나, 추가로 자동차세 연세액을 분할 납부하는 3월은 전년 대비 -18.2%, 그리고 법인 지방소득세를 신고납부하는 4월은 무려 -29.5%가 줄어들었다. 개인 지방소득세를 납부하는 5월에도 전년 대비 -12.1%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 기업들과 개인들의 소득이 급감해서 낼 세금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내년도에는 더 심각한 어려움이 다가올 것이다. 금년도 세수 감소의 상당 부분이 작년도에 경기상황을 반영하여 넘어온 것처럼, 내년도는 금년도 경기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6%였던 경제성장률이 금년도는 1.6%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법인이나 개인이 내는 금년도 소득세는 전년도 실적을 신고해서 내는 것처럼 금년도 실적이 취약하면 내년도 세금 내는 액수도 줄어들 것이다.
세수결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기재부는 제안처럼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세계잉여금 등 자체 여유 재원으로 해결하게 된다면, 민선 8기 공약 이행을 위해 저축해놨던 돈들을 다 풀어버리게 되는 것이 되어 결국 공약사업들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대전시의 경우 2022년도 결산자료에 따른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2699억 원으로 예상되는 세수 결손 1948억 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금을 한번 써버리면 다시 모으는 데는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데, 더 이상 졸라매면 이제는 숨이 차 죽게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전시가 겪는 재정위기의 상황을 앞두고 있는데, 민선 8기 공약사업은 '500만 평 이상 산단 조성' '제2시립미술관 음악공연장 건립' '도시철도 3·4·5호선 동시 추진' '호남고속도로 지선 확장 및 제2외곽순환도로 건설' 등 55조 이상이 필요한 사업들이 줄 서 있다는 사실이다. 민선 8기 핵심공약을 완전히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인다.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재정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성장동력 저하로 나타나는 경기침체 등 당분간 예상되는 불편한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못 본척하면서 여전히 장밋빛 그림을 그리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내려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더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경제 성장을 믿는가? 그러면 반드시 위기에 대비하라.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Paul Romer)의 말이다. 이제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믿고 준비하는 것이 안전한 시대가 되고 있다. 정치인들도 행정도 하루빨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본인은 물론 지역도 혼란을 덜 겪게 될 것이다./권선필 목원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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