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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배재대 총장 |
최근의 객관적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낮은 출산율이 계속되고 대학이 현재의 정원 수준을 유지한다고 전제할 경우 2040년대가 되면 지방대학의 60%가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지방대학 중에서도 가장 소멸 위기가 큰 대학은 사립대학이며, 그 중에서도 수도권과 거리가 먼 영남과 호남에 위치한 대학들이라고 한다. 대전과 충청에 위치한 대학들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나, 역시 절반 이상의 대학이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방대학 위기론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필자가 대학에서 교편을 처음 잡은 것이 24년 전인데 그 때부터 이미 이러한 위기론이 존재해 왔다. 즉 지난 20년 동안에도 늘 지방대학, 특히 지방사립대학은 늘 위기론과 직면해 살아와야 했다.
지방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20년 동안에도 위기를 맞아 왔었고, 앞으로 20년에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이다. 일부 대학과 과거 정부가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를 과장하고 두려움을 확산시켜 대학의 본질을 파괴하면서 그리고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무리한 구조조정을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분석해, 이러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정책적, 제도적,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동안 수많은 환경 변화에 적응해 왔기 때문에 인간이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 또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지방대학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해 왔으며, 앞으로도 적응해 나갈 것이다. 물론 적응에 실패한 대학들도 일부 발생해 왔고 또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지방대학의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발적으로 환경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적응에 실패한 대학들이 발생할 경우 이들이 다른 대학에 통합되거나 커다란 피해 없이 퇴출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입시 자원의 감소라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 강화, 평생교육의 확대, 유연한 학사 운영, 학과 구조조정, 대학들 간의 협력과 연합 및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들의 자발적인 노력은 각 대학의 특성과 조건에 맞게 이뤄지고 있다.
만약 정부가 대학의 특성을 무시한 채 단일한 잣대로 대학의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학의 적응 노력을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유학생의 유입과 국내 취업을 쉽게 해 주고, 지방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지방의 정주 조건을 향상시켜 주면 된다.
대학의 주인이나 경영진 또한 대학의 위기를 확대 과장하면서 대학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와 의사를 무시하기보다는 구성원과의 진솔한 소통과 대화를 통해 각 대학의 특성과 조건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와 혁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본질, 그리고 교육의 기본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위기감과 두려움에 짓눌려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다면 위기는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방적인 독재와 강요가 아니라, 민주적인 소통에 바탕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적인 위기 대처 방식은 대학 내에서뿐만 아니라, 대학 간, 그리고 대학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간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김욱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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