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유토피아는 어디에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유토피아는 어디에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3-10-23 10:13
  • 신문게재 2023-10-24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김태열
김태열 수필가.
노랗게 가을이 익어간다. 생의 기쁨은 마음만 열려있다면 늘 마주치는 소소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 삶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 이곳은 살기 좋은 곳일까.

외국에 비추어진 한국은 어디서나 연결되는 인터넷, 의료보험 체계,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곳곳에 있는 편의점, 먹을 게 넘쳐나는 식문화, 안전한 밤 문화가 있어 설렘을 주는 나라다. 해외로 여행을 가 보면 우리나라는 편리한 공항·철도·지하철, 쇼핑공간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 안전한 물, 깨끗한 공공 화장실, 하천 따라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있어 참 살기 좋은 곳임을 깨닫는다.

그런 우리 사회에 연민이 유배되고 증오의 기운이 퍼진다. 가짜뉴스가 넘실대고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등 분노를 터트리는 사건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밝고 안정적이어야 할 초등교육 현장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기사를 보니 교권을 둘러싼 위축된 환경 때문에 교사들이 우울증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교육 현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에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이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갈수록 웃음과 여유가 줄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가 경쟁이 심한 데다 패자부활이 쉽지 않은 승자 독식의 문화도 한몫 거든다. 사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갈등이나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일이 생기면 머리를 맞대 차분히 풀기보다는 처음부터 편을 나누어 싸움하듯 한다. 공감과 관용, 존중과 배려와 같은 '신뢰 자본'이 점점 줄고 있다.



갈등과 분열이 없는 이상적인 세계가 있다. 괴롭거나 불쾌한 감정이 생기면 약을 먹어 해소하고 계급에 따른 일만 하면 안락과 쾌락을 즐길 수 있고 얼굴이 늙지 않다가 정해진 시간에 순식간에 죽음을 맞는다. 과학은 이런 세계를 향해 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는 실연 불안 사랑 그리움 같은 감정을 가질 자유가 없다. 무엇보다 문학책을 읽거나 감정을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 전체주의와 과학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모습이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들면 이상향을 꿈꾸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노자의 '소국과민'에서 영감을 받은 무릉도원. 십승지 같은 곳이다. 귀거래사로 잘 알려진 도연명은 이상향을 묘사한 도화원기를 지었다. 그곳은 고립된 채 살아가는 자급자족의 소박한 사회다. 과연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사는 삶이 행복할까. 그런다고 모든 욕망마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상향은 헛된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세상살이는 여러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 뒤엉켜 파도처럼 출렁대는 바다와 같다. 바다가 위험하다고 해서 배가 항구에만 있지 않듯이 우리는 거친 삶의 바다를 자유의지로 항해해야만 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의 본질은 부조리 속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삶의 긍정을 말한다.

우리는 완전한 원을 본 적도 없고 그것이 결코 실재할 수 없음을 알아도 그릴 수 있는 듯이 한다. 유토피아라는 말도 그렇다. 유토피아는 이 순간의 맑은 하늘 싱그런 바람 커피 한잔 따듯한 햇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데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꽉 막힌 벽 앞에 좌절하여 화풀이하거나 삶의 무게에 주저앉아 원망하거나 혼자만의 세계로 도피하는 사람들의 울음이 모여 헬조선을 외치고 있다.

유튜브에서 외다리 떡장수로 알려진 최영민씨 이야기다. 그는 고아로 자랐고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구인 채 안정적인 직장 없이 하루에 몇 가지 일을 해야 할 정도의 힘든 삶을 산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 축척을 통해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 꿋꿋이 살아갈 이유를 만들고 있다. 세상에 의해 규정된 성공의 가치를 벗어나 보면 유토피아는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 마음먹기에 있는 게 아니겠는가.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