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교수 |
그러나 이 고충이 단순한 감정적 하소연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대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모두가 공유하지 않는 한, 그리고 공유된 정체성에 기반한 대전의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지 않는 한, 대전의 발전 방향과 내용을 정할 수 없고, 이는 바로 대전 발전의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과연 대전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름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짧은 머리를 짜내어 생각해낸 말은 '과학도시'다. 맞다 누가 뭐래도 대전은 아무런 재미도 없는,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노잼' 도시가 아닌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필두로 한 한국 최고의 과학도시다. 어쩌면 타 도시에서는 이러한 대전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내심 자기들도 대전과 같이 과학도시로서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면 훨씬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는 뒤집어 보면 실은 우리의 무능함을, 우리의 노력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할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기에 그렇다. 역대 그 어느 시장도, 정치인도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연계한 과학도시로의 발전을 꾀해보거나 보란 듯이 성공한 적이 없다. 이 점에서 그동안 지역 정계를 주름잡아 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인들과 대전시장들은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대전과 연구개발특구의 지금 모습을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한다면 연구개발특구에 그 많은 과학연구기관이 들어서 있고 거기서 수많은 미래 성장동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지역발전으로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쩌면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몸은 대전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신은 대전을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전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 같은 존재, 그 느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모습은 과학인에게도 대전시민에게도,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 서로의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대전 스스로 한국 최고의 두뇌체를 관심 밖으로 처박아 두고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는 현재의 모습은 '미래 대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입을 닫게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전시와 과학인들이 서로의 담장을 헐어 부수고 하나로 만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각자 그리고 함께 머리를 짜내어 공동의 발전방안을 그려내야만 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인하여 대전이 성장할 수 있고, 대전이 있기에 대덕연구개발특구가 더 발전할 수 있게 하여야만 한다. 명색이 5대 도시니, 미래 도시니 하면서 언제까지 대전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빵집과 칼국수로 묶어둘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올해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조성된 지 50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서울 홍릉의 조그만 연구단지가 대전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빛나는 성장을 하였건만, 그 이후가 없다. 그 점에서 50주년은 빛이 바랬다. 오늘까지 이룩한 업적에 마냥 환희를 느낄 수 없고, 다가올 내일 설렘 가득한 꿈을 담을 수가 없다.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인재양성을 통해 국가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지역경제 발전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도록…" 이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스스로 정한 존재 이유다. 과연 대덕연구개발특구는 위 존재 이유에 합당한 조직체인가? 10년 뒤 환갑을 맞이하는 60주년에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그저 감사할 뿐인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종학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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