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안중근 의사를 '코이의 법칙'으로 모셔오다니?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안중근 의사를 '코이의 법칙'으로 모셔오다니?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10-2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침 산책길을 나갔다가 아파트 이 집 저 집에서 내놓은 잡다한 수거물들을 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예쁘장하고 조그마한 탁상용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유난히도 눈길을 사로잡는 거였다. 옆 동 아파트에 살던 딸이 아이 교육용으로 쓰던 '생각하는 의자'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딸이 곁의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 딸네 집에 종종 가곤 했다. 가서 보면 외손녀가 잘 놀기도 했지만 경우에 따라선 심통을 부려 제 어미를 어렵게 하는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제 어미는 다소곳한 말로 타일렀지만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참아내기가 어려울 경우도 있었다. 두고 보기가 안 됐던지 제 어미는 떼를 쓰는 애를 조용히 손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들어가자마자 상비해 놓은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거였다. 뉘우침의 기색이 없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뉘우칠 시각까지 그냥 두는 거였다.

"엄마, 잘못했어요" 할 때는 "잘못한 게 뭔가 얘기해봐" 하는 식으로 잘못을 깨닫게 하는 거였다. 처음에는'생각하는 의자'에 앉는 것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더니, 얼마 지나니 의자 얘기만 나와도 낯빛이 달라지며 '생각하는 의자'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였다. 어미의 자식에 대한 기대가 개과천선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이런 외손녀는 학령기가 돼 취학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부푼 꿈을 안고 제 어미와 꼬마는 예비소집 날 학교운동장에 발걸음을 했다. 허나, 운동장엔 학생도, 학부형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알아봤더니 이 학교가 급식문제로 방송을 탄 일이 있었는데, 그 후 기피학교가 됐다는 거였다.

이런 정보를 듣고 딸과 사위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외동딸 하나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이리 됐으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궁리를 거듭하는 것 같았다. 끝내는 집을 팔고 태평동으로 이사를 갔다.

제 엄마 아빠의 극진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관심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훌륭하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를 방불케 했다. 교육 열의와 현명한 대처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엄마 아빠의 극진한 교육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생각하는 의자' 영향 때문인지 아이는 칭송받는 어린이로 말썽 부리지 않고 건실하게 크고 있었다.

환경의 중요성과 맹모삼천지교를 얘기하다 보니 자식 교육을 지엄하게 하셨던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가 떠올랐다.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생각난 거였다.

아래는 일제치하에서 우리의 숙적이었던 이등박문을 하얼빈역에서 권총 사살하고 체포된 안중근 의사에게 그 어머니가 보낸 편지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가 쓴 마지막 편지가 되는 셈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르렀는데,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네가 입을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세상 어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느냐만 가슴 뭉클한 교훈이요, 나라와 자식에 대한 참된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도 소중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롭게 죽으라는 비장한 어머니의 한 말씀은 아들에 대한 지엄한 교육이요 참다운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듣는 말 중에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흔히 '코이의 법칙'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코이'는 관상어 잉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엔 어항이나 수족관에 관상어를 가르는 집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관상어는 그 종류도 다양하게 많지만 그 중에서 특이종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코이'라는 잉어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아야겠다.

'코이'는 작은 어항에 기르면 5~8Cm 밖에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기르면 15~25㎝가 되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처해진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두고'코이의 법칙'이라 한다.

사람들 또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100%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을, 어떤 환경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능력 발휘가 달라진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100%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악조건의 환경에 못돼 먹은 사람과 숙명적인 시간을 같이했다면 10% 능력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이'가 처한 환경이, 어항, 바다, 어느 것이냐에 따라 크기가 5~8㎝에서 90~120㎝로 달라질 수 있다니,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람'과 '코이'가 뭐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고기가 사는 물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듯, 사람 또한 처한 환경에 따라 현상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천추의 명불허전의 인물로 기림을 받는 것도 일제 치하라고 하는 환경 속에 많은 독립투사를 만난 것이며, 훌륭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모시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사람도 '코이'처럼 처해 있는 환경이나 대상에 따라 소인도, 졸장부도, 안중근 의사 같은 빛나는 용도 될 수 있다.

정원사가 정원수를 전지하고 수형을 바로잡듯이 우리도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부모로서 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와 같은 인간 정원사가 되어야겠다.

우리는 부모 역할을 잘못하여 자식을 '어항 속의 코이'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맹모삼천지고'하는 어머니가 돼서 안중근 의사 같은 '살신성인하는 용의 코이'로 키울 것인가?

오늘 따라 안 의사를 용이 되게 하신 조마리아 여사가 왜 이리 존경스럽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안중근 의사를 '코이의 법칙'으로 모셔오다니? 생각을 거듭해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