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내게 주는 선물, 코뚜레 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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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내게 주는 선물, 코뚜레 벗기

  • 승인 2023-10-2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여가는 잠시잠깐 쉬는 시간이다. 사전적으론 자투리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남는 시간이 어디 있으랴. 죽을 때까지 기다려도 만나기 어렵다. 남는 시간이 아니요, 만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입으론 그렇게 주장하면서 늘 시간에 쫓긴다. 단단히 세상에 코가 꿴 것이다. 수년 전에 발표한 필자의 시 <코뚜레> 이다.



코사리 떼고

대추나무 송곳으로

코청 뚫더니



노각나무 코뚜레 끼운다

옴짝달싹 못하게

목걸이에 턱걸이

우넘기며, 고삐까지



너도나도

스스로 동여매고

고삐 쥔 세상에

함부로 끌려다닌다



코뚜레는 소치레의 하나이다. 말치레는 멋있게 보이려는 장신구에 해당하지만, 소치레는 사람이 잘 다루기 위해 하는 것이다. 소치레에는 코뚜레·목찍게·고삐·방울 등이 있다. 다른 이유로 몇 차례 소개한 일이 있다. 코뚜레는 코청을 뚫고, 거기에 끼우는 고리모양의 나무이다. 어미 소가 임신하면서부터 단단하고 질긴 나무로 준비한다. 상처가 아문 다음에 끼운다. 목찍게를 목에 걸어주고, 거기에 위차파악이 용이하도록 방울을 단다. 목찍게는 코투레가 안정되게 한다. 고삐는 코뚜레와 연결 한다. 코뚜레 때문에 코가 아파, 고삐 쥔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것이다. 어려서, 풀 뜯기다 목매기송아지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고꾸라지기도 했다. 성숙한 소에게는 몇 사람이 달려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힘으로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서 나고 자라 제법 덩치가 커진 송아지에게 코뚜레 끼우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 동병상련이었을까, 아파 몸부림치는 모습이 몹시 안쓰러웠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코가 단단히 꿰어 길들여지고, 끌려 다니는 것이다. 소와 다르다면, 각자 자진해서 자신의 코에 스스로 코뚜레를 끼우는 것이다. 무심코 고삐는 세상에게 쥐어준다.

세상에 끌려 다니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어느 날 문득 꽃이 피었다, 낙엽이 진다. 날이 쌀쌀해져 옷은 두툼한 것으로 갈아입었지만, 행사에 쫓기다 보니 자연의 변화에 둔감한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함께 일하는 담쟁이어린이집 원장이 국화바구니를 들고 왔다. 바구니에는 하양, 노랑, 보랏빛 삼색 국화가 담겨 있다. 일깨워준 정성이 고맙고 아름다워,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렇지 국화의 계절이로구나. 국화는 일조량이 줄어야 꽃을 피우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을꽃이 된다. 된서리에도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군자다워 사군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던가? 서리에도 굽히지 않음은 지(志)요, 늦게 피우니 군자의 덕(德)이며, 물 없이도 피어나니 한사(寒士)의 '기(氣)'라 하였다. 이를 국화의 삼륜(三倫)이라 한다. 인격도야와 자기수양의 대상인 것이다. 다른 꽃은 거개 지고 늦가을에 홀로 피워 은일자로 보기도 한다. 은일이 숨어 지내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더욱 가까이 만나는 것이요, 자연과 진솔하게 교감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꽃조차 외면하지 않으랴?

그러고 보니 곳곳에서 국화축제가 열린다. 규모의 경쟁일까? 서로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꽃을 즐기기엔 한 송이로도 충분하지만, 많으면 많은 대로 볼 것이 있다. 이미 보았다고 본 것이 아니다. 사람 구경은 덤이다. 모두 방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축제장에 가면, 거기는 거기대로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 않던가? 혹여 방콕하거나, 세상고삐에 꿰어있으면 한번쯤 일탈해보자. 건강한 일탈은 자신에게 주는 향기로운 선물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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