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신도들은 파티가 자주 있는 듯 각자 할 일을 찾아 열심히 돕는다. 어린이들은 저만치에 따로 식탁이 놓여있다. 나는 혼자 멋쩍게 서 있기가 뭣해서 뭐든 도우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고기가 구워지면 바로 먹을 수 있다며 식탁으로 안내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보여서 인 것 같았다. 하기는 그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처음 보는 분들로 누구에게든 말 붙이기도 좀 어색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의자에 앉았더니, 앞에 앉은 분이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저는 영어반에 오는데요, 오늘 영어반은 없다고, 삼겹살 파티에 오라고 해서 왔어요."
"아, 네, 잘 오셨어요. 많이 드세요."
잠시 후, 식탁 위에는 갖은 야채와 양념된장, 아삭이 고추, 마늘, 바나나, 샤인 머스캣 등 푸짐하게 차려졌다. 한 분이 일어서더니 오늘 고기를 구우려고, 어제 고기 굽는 것을 배워 왔다면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다들 그다지 말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선교사가 오라고 해서 갔는데, 선교사도 바쁜지 저 멀리 있어서 그저 눈인사만 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나는 구운 고기를 몇 첨 먹고, 자리 교체를 해주려고 손을 닦으러 건물 내 주방으로 갔다. 그때 마침 남자 한 분이 대형 전기밥솥에 라면을 가득 끓여서 들고나오려던 참이었다. 한 손에는 빈 그릇을 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빈 그릇을 받아 들고 뒤따라 나왔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한옆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분이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얘들아, 여기 라면이야. 어여와서 먹어~"
"와아! 라면 냄새 죽인다."
아이들이 냄새를 킁킁 맞는 시늉을 하면서 우르르 뒤를 쫓아 따라왔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정경이 눈에 선하다. 삼겹살 구이도 맛있었지만, 아이들이 와아! 좋아하던 환성이 너무나 정겨워서다. 그날은 날씨가 좀 흐려서, 오후 5시경인데도 좀 어둑했었다. 약간 서늘한 날씨에 한옆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은 고기를 안 먹었을 테니 배가 출출했을 터, 라면 냄새가 정말 입맛을 자극했을 것이다. 마치 우리도 어딘가 갔다 오다가 배고플 때 먹는 라면처럼 말이다.
라면을 가득 끓인 대형 밥솥 옆에 빈 그릇을 갖다 놓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라면을 덜어 먹는 모습도 흐뭇했다. 시간이 늦어져서 집에 오려고 앞마당을 나오면서 보니, 저쪽 식탁에는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어른 몇 사람이 연신 고기를 구워서 아이들을 먹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저기에 라면 끓여왔다고 말해줬더니 아이들이 고기를 먹다 말고 모두 그쪽을 바라보았다.
"라면 많으니까, 고기 먼저 먹고 그쪽으로 가서 라면도 먹어."
마치 내가 큰 인심을 쓴 듯, 말만 했는데도 마음이 흐뭇해져서 엔돌핀이 솟구쳤다. 사실 나는 그날 교회 행사로 영어반이 취소되어서 아쉬웠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어보다도 소중한 정겨운 시간을 가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COVID-19)로 인해 입을 꾹 다물고 지내다 보니, 영어는 아예 벙어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해외여행 시 필요한 간단한 단어라도 연습하려고 여기저기 학원을 알아보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올해 초, 문득 영어권 선교사가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가 생각나서 전화했다. 그 당시 여선교사가 전화를 받았는데, 영어반(English Class)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는 다르지만, 전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그때가 음력 설 연휴로 며칠간 집에서 혼자 있던 터, 여선교사에게 카톡을 보냈다. 떡국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며 먹고 싶다고 했다.
여선교사는 두 명씩 선교활동을 하며 같이 지낸다. 그날 나는 집에 있는 먹거리를 싸 들고 가서 교회 주방에서 같이 요리해 먹는데 이 또한 무척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 각자 고향을 이야기하면서 향수를 달랬던 것 같다. 여선교사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자주 교회 주방에서 라면, 스파게티 등 만들어 먹으며 즐거움은 이어졌었다. 영어반은 선교사들도 수업시간에는 종교에 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물으면 대답해 준다. 수업방식도 그때그때 다르지만, 선교사는 대개 대학교 1, 2학년으로 미국식 수업이어서 흥미롭다.
그런데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여선교사가 두 명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나 또한 그즈음 바빠서 한동안 영어반에 못 갔다.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합류했다.
지난 주는 교회 신도들의 삼겹살 파티로 수업이 취소되었다. 전날 담당 선교사가 단체 카톡에 영어 수업은 없지만, 삼겹살 먹으러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단지 삼겹살을 먹으러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기는 망설여졌다. 집도 멀리 있는 데다, 교회 신도들과는 따로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다. 간혹 신도 중에도 영어 회화를 배우러 참석하기는 해도 다들 바빠서 따로 친분을 갖기는 쉽지 않아서였다.
몇 번 망설이다가 끼니도 해결하고, 무엇보다도 영어를 한마디라도 연습할 겸 간 것이다. 그나마 거의 한 달여 만에 가기 때문에 영어 연습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영어보다도 더 뜻 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마음이 내내 든든했다.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었더라도 순간은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되새김할 테니까 말이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