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때로 뜸해지면 그리운 사람이 친구 아닐까? 자유로운 제 모습 잃지 않고 제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 사이. 서로 격려하며 때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량과 배려가 있을 뿐, 견줄 일도 시기할 일도 없는 관계. 별 쓸모없는 수다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만 한 그런 사이 아닐까?
지난달에 좋은 사람과 함께하려면, 먼저 바른 사람이 되라하였다. "친구 잘 사귀어라"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좋은 벗, 바른 벗은 어떤 사람일까? 정의가 백이면 백 모두 다르리라. 옛 사람은 어땠을까? 고사성어로 알아보자.
간과 쓸개를 서로 보여주는 친구, 즉 속내를 다 보여주는 친구(肝膽相照),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으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귐(管鮑之交), 벗은 믿음으로 교제하는 것(交友以信), 아교와 옻칠처럼 서로 뗄 수 없는 친밀한 사이(膠漆之交), 쇠같이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金蘭之交), 쇠와 돌처럼 굳은 사귐(金石之交), 끊을 수 없는 매우 두터운 교분(斷金之交), 거스름이 없는 아주 허물없는 벗(莫逆之友), 서로 죽음을 대신할 만큼 막역한 사이(刎頸之交), 신의의 관계(朋友有信), 물과 고기처럼 뗄 수 없는 사이(水魚之交),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로 오래된 벗(竹馬故友),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知己之友), 영지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교제(芝蘭之交), 지기지우와 비슷한 뜻으로, 소리를 인정해주는 벗(知音知己, 伯牙絶絃), 베옷 입을 때 사귐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친구(布衣之交) 등이 있다.
지란지교는 추상적이어서 바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그만큼 폭넓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것 같다. 향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정의하기도 한다. 좋은 말과 행동거지가 본보기가 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허허로운 사람. 겸손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림으로 살펴보자.
선면지란병분(扇面芝蘭竝芬, 지본수묵, 17.4×54cm, 간송미술관 |
지란지교를 지초와 난초의 사귐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초는 여러해살이로 자주색염료나 약용으로 쓰인다. 향기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영지 역시 마찬가지나, 불로초과에 속한 영약으로 신령스럽게 여겨왔다. 한자 '지(芝)'가 버섯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의 화가도 영지로 이해한 것 같다. 같은 내용을 담은 추사 김정희의 <난맹첩(蘭盟帖)>, 호생관 최북의 <와유첩臥遊帖> 등에 영지로 그려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는 영지와 난초를 그리고 화제로 "영지와 난초 향기 아우르네, 쓰다 남은 먹으로 놀다(芝蘭竝芬 戱以餘墨)"라 썼다. 언제고, 변함없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길 지향한 것 아닐까? 좌측의 글은 추사의 친구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1783~1859, 문신)이 썼다. 충분히 글 쓸 자리가 있어, 처음부터 합작하기로 했던 것 같다. "백년 앞에 있어도 도는 끊이지 않고, 온갖 풀이 모두 꺾여도 향기는 사라지지 않네(百歲在前道不可絶 萬卉俱?香不可滅)." 역시 강조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요, 영원한 향기이다. 맑고 고귀한 이상적인 우정, 서로 덕을 높이는 변함없는 신뢰가 담겨있다. 우측 중간에 쓴 글은 애사(?士) 홍우길(洪祐吉, 1809~1890, 문신)이 "완당을 공경하며(恭玩)"라 썼다. 잠시 그림을 소유했던 모양이다. 좌중앙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이 "영지와 난초를 몸에 노리개로 차네(?佩芝蘭)"라고 감상기를 썼다. 추사와 이재 두 사람 작품만 그대로 두었으면 여백도 적절하고 구성이 훨씬 좋았을 법 하다. 의미 또한 더욱 고고하리라.
추사와 이재는 30대 중반에 만났지만, 죽마고우 이상으로 매우 친밀하게 지냈으며 서로 의지하기도 하였다. <완당집>에는 추사가 이재에게 보낸 편지 35통이 전한다. 소소한 가정사와 세상사가 담겨있다. 더불어 동고동락 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함께 고서화를 감상하고 연구하며 안목과 감식안을 높였다. 시서화는 문인 수양의 지표이자, 자아표현의 수단 아니던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함께하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교감했다. 이 그림 또한, 영원한 향기가 되길 염원한, 고품격 교류의 흔적이리라.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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