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인 사회과학부 기자 |
졸업 후 아름다운 기억만 남아 종종 혼자서만 생각했던 L 선생님께 용기 내 연락을 드린 건 올해 5월 15일이었다. 올부터 교육 분야까지 맡게 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교사의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며 내가 보낸 학창시절과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다 가까이서 보고 느끼게 됐다. 기자실에 앉아 한 줄 한 줄 진심을 눌러 담아 메시지를 보냈고 반가운 대화가 이어졌다. 나를 기억해 주는 선생님이 감사하고 애틋하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된 나를 선생님께 이야기할 수 있어 흐뭇하면서도 쑥스러웠다. 십오 년 넘게 눌러 담았던 그리움이 터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L 선생님께 지난달 또 한 번 연락을 했다. 오랜 기간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대전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 날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고인이 된 선생님을 기억하는 다른 선생님들은 참 많이도 울었다. 동료 선생님은 고인과의 생전 추억을 회상했고 남동생은 덤덤하게 추모사를 읊었다. 취재를 마치고 차에 앉아 선생님께 또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은 괜찮냐고, 힘들면 주변에 많이 알리고 함께 해결하자고.
2. 제보를 받았다. 담임 교사로부터 학생이 목 졸림을 당하고 뺨을 맞았다는 내용이다. 피해 학생 학부모를 수소문했다. 학부모는 피해 학생이 고3인 만큼 사건화에 대해선 조심스러웠지만 여러 생각 끝에 취재에 응했다. 괜찮을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겠다고 했다. 사건 당일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나열했다. 피해 학생이 입은 물리적 상처, 이후 극심했을 불안과 정신적 고통, 학교와 담임 교사의 대응 등 교실이, 학교가 도무지 정상이 아니었다.
서울서이초와 대전용산초 그리고 전국의 또 다른 선생님이 힘들어하다 스스로 생을 마쳤다. 땅에 떨어진 교권을 회복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나 역시 그 뜻과 다름이 없다. 무너진 교육현장을 일으키기 위해 뜻을 모으고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늦게나마 정상 범주로 돌아가기 위한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닿은 정반대 내용의 제보에 피해 학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가해 교사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교권보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마음을 쏟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어떻게 손바닥으로 따귀를 올려붙일 수 있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건 발생 후 한 달 반이 넘도록 피해 학생이 자신을 폭행한 가해 교사를 한 교실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이는 교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치료되지 않은 상처에 아파하는 아이가 분명 있다. 지금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L 선생님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임효인 사회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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