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국화는 평화를 상징한다. 사진작가 마크 리부는 1967년 베트남 반전 시위가 벌어지던 미국 워싱턴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국방부 건물을 향해 행진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방위군이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한 소녀가 총검을 든 군인들에게 꽃을 내밀었다. 마크 리부는 셔터를 눌러 이 순간을 포착했다. '꽃을 든 소녀'라는 제목의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반전 여론을 확산시켰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꽃을 든 소녀보다 더 겁먹은 표정이었어요." 당시 소녀가 내민 꽃이 바로 국화였다.
국화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꽃은 이처럼 많은 이야기와 뜻을 담고 있다. 이야기꾼(storyteller)이자 상징(symbol)인 셈이다. 1967년 미국 워싱턴의 국화가 반전 평화를 상징한 것처럼 러시아와 포르투갈 등에서는 카네이션이 혁명을 의미한다. 영국 여성들은 제비꽃을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삼았다. 역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꽃은 많은 이야기와 상징을 담고 있다. 사랑의 징표로, 혹은 축하와 고마움의 표시로 꽃을 건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느 책에선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꽃은 연결자(connector)이기도 하다. 사람을 잇고 마음을 잇는다.
유성이 국화 향으로 뒤덮인다. 10월 13일부터 11월 5일까지 24일 동안 유성 유림공원과 온천로 일대에서 국화전시회가 펼쳐진다. 올해로 벌써 14회째를 맞는다. 유성 국화전시회를 기다리는 지역민이 많아졌다. 이번 국화전시회의 주제는 '국화 향이 보내는 유성의 가을 편지'다. 유림공원과 온천로, 그리고 동별 소공원에서 선보이는 국화는 22만 본, 무려 5000만 송이에 달한다. 유성구가 지역민들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에 그만큼 담을 내용이 많은 셈이다. 직원들이 유성구 양묘장에서 이른 봄부터 직접 키웠다. 송이마다 정성을 담았다.
국화 향만 가득한 게 아니다. 볼거리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유성 유림공원 메인 광장에는 국화 풍차와 아치가 설치되어 웅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못 주변 산책로에는 국화 조형작과 분재, LED 경관 터널, 포토존 등이 설치된다. 유성 온천로에는 두드림 공연장과 온천탑 일대에 대형 꽃탑과 국화 조형작 등이 설치된다. 지역별 소공원에도 국화를 전시해 동네 가까이에서도 꽃을 감상할 수 있다. 14일 가을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국화음악회를 비롯해 목재 이용 체험 행사, 로컬푸드 페스티벌, 유성 국화마라톤, 반려동물 문화축제 등 크고 작은 부대행사가 국화전시회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어느 시인은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 수만큼 꽃을 피운다는 국화꽃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가을에 국화가 많이 피는 이유를 알았다"고 노래했다. 국화 가득한 길을 걸으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시 구절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국화는 그리움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라 안팎이 소란하고 일상이 신산스럽게 느껴진다면, 국화전시장을 찾아 국화 향이 보내는 유성의 가을 편지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그리움을 달래고, 천둥과 먹구름도 오래 가지 않는다는 희망까지 발견한다면 더 뜻깊은 가을이 될 것 같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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