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快(쾌할 쾌) 山(뫼 산) 寃(원통할 원) 牛(소 우)
출 처 : 孤山遺稿(고산유고) 雜著(잡저) 敍懷(서회)
비 유 : 자신은 옳은 일에 매진했으나 도리어 죄를 얻게 됨을 비유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항상 불만과 억울함이 존재한다. 그것이 씨가 되어 원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불평과 불만은 공평(公平)하지 못한데서 생긴다.'라고.
여기서 공평함이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이다. 곧 자기와 같은 입장에서 남과 비교해 볼 때 공평하다면 불평과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대(大)그룹 부장(部長)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과, 중소기업의 부장(部長)은 같은 부장이라는 위치이지만 연봉 차이가 많다. 그런데 연봉이 적은 사람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과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직장,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의 급여가 1,000원 정도만 차이가 나도 급여가 적은 사람은 불평을 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대우가 다르기 때문에 공평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철(鄭澈), 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효종(孝宗)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하여 산릉(山陵)문제와 조대비의 복제(趙大妃 服制)문제가 대두되어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 노론파(老論派)에 맞서 상소로써 항쟁했으나 과격하다고 하여 1661년(현종2) 함경도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는데, 나이 74세였다.
윤선도 자신은 오직 나라를 위한 충정(衷情)으로 글을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북쪽 변방에 유배되어 천하의 궁벽한 곳에서 죽음을 맞게 될 처지를, 쾌산원우(快山?牛)에 빗대어 '敍懷(서회/ 회포를 서술하다)'를 아래와 같이 썼다.
-옛날에 쾌산(快山/ 평안남도 영원군의 眞山)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피곤하여 쟁기를 놓고 잠시 언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 농부를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를 본 농부의 소가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힘껏 싸워서 마침내 호랑이를 쫓아 버렸다. 호랑이는 달아났고 밭은 짓밟혀 엉망이 되었다.
잠시 후 농부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려고 밭을 보니 온통 소발자국과 더불어 밭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낮잠 때문에 전, 후 사정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농부는 화가 치밀었다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해낸 이 용감한 소는 당연히 농부로부터 상(賞)을 받아야 하는데, 농부는 소가 호랑이를 쫓아내느라 밭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모르고, 밭을 망쳤다며 불같이 화를 내고는 소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를 일러 '쾌산의 억울한 소(快山寃牛)'라고 부른다.
윤선도(尹善道)는 늙은 신하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올바른 주장을 펴다가 북쪽 변방에 유배되어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쾌산의 억울한 소'는 바로 자기라고 생각했다.
사건이 생기면 자세한 내막을 철저히 규명해보고 모든 정황을 파악한 후에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세상에는 억울함이 비단 쾌산(快山)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뿐만이 아니다. 한 국가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참 많다. 더구나 법의 판결의 공정함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편중된 생각과 잘못된 판결은 한사람의 인생과 가정을 완전히 망쳐놓기 때문에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이러한 억울한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알 수 없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임금께 직접 고할 수 있도록 신문고(申聞鼓)가 있어 억울한 백성의 한을 다소 풀어 주었다. 그리고 조선중엽 때는 '격쟁(擊錚)'이라는 제도로 죄 없이 억울하게 당한 자들을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제도를 시행하였다.
현시대에 시비(是非)의 판정은 판사의 판단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인격과 양심을 걸고 법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특히 법은 권력(權力)과 재물(財物), 인연(因緣/ 지연, 학연, 혈연)등에 공평하지 못하면, 이는 이미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일부 특권층을 위한 법으로 그 의미가 훼손(毁損)되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법 집행의 잘못으로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도 또 특별한 대우를 받는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법관(法官)이 되는 길이 어렵고, 법관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존경받는 공인(公人)인 것이다
요즈음 법의 판정이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다는 일부 보도를 보면서 권력을 이용한 무법주의가 쓸쓸한 마음에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힘 없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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