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노무사 |
이는 사실상 노동조합을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할 수 있는 사용자의 노조 운영비 원조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고 있으나, 부당한 원조를 받은 노동조합을 처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노사 법치 확립'을 위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매수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적극적으로 처벌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법적 근거도 없이 노동조합의 회계장부를 제출하라 압박하더니, 이제는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령만을 고쳐 회계 공시를 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조합비 세액 공제에서 배제하겠다는 정부의 노동 개혁에는 '법치'로 노동조합을 몰아붙이겠다는 것 외에 다른 정책은 없는 것인가?
노동 시간의 유연성을 통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하겠다던 정부의 노동 개혁 '정책'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정부의 노동 시간 유연화 방안은 주 69시간 노동에 대한 여론의 질타를 맞고 좌초한 후, 기약도 없이 표류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공정한 임금 체계의 개편 안은 아직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상 '업무개시명령'으로 진압하는 데 성공했던 정부는 이미 좌초된 노동 개혁은 포기하고 압수수색과 '형법'으로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법치'는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과적·과로 운전을 강요받고 스스로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 되어가는 우리나라 화물운송 산업 구조를 얼마나 개선하였을까? '건폭'에 대한 단호한 '법치'에도 불법 하도급과 짬짬이 설계·시공·감리로 순살 아파트가 양산되어온 건설 현장의 부조리는 왜 여전한 것인가?
추석 연휴 직전 376회의 압수수색과 727일의 검찰조사를 받았던 야당 대표의 구속 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차고 넘친다는 증거들과 150여 페이지의 구속영장 청구서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던 정부의 '법치'는 결국 법원의 인정을 받아내지 못하였다. 정권 출범 이래 단 한 차례의 여야 대화도 거부하고 오로지 대치정국 만을 걸어왔던 정부의 '법치'는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국민의 판단을 기다리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강서구 보궐선거에서 이 정부의 '법치'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위기를 힘들게 빠져나온 국민들 사이에는 오히려 지금이 코로나 시절보다 더 어렵다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무역수지, 재정수지 각종 경제지표 등은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의 모범국이라며 세계적인 부러움을 받던 우리나라의 경제 순위도 이제는 하나둘씩 뒤로 밀리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경기 회복의 모멘텀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민들이 더 이상 정부를 믿고 정부의 '법치'가 구현될 그 날을 마냥 기다려 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부의 '법치'가 아니라 오늘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는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정책' 능력이 부족한 정부라면 연합 정부라도 구성하여 이 난국을 타개할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보여줄 것을 국민들은 바랄 것이다.
이훈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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