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특이한 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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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특이한 孝

김용복 / 극작가, 평론가

  • 승인 2023-10-04 09:33
  • 수정 2023-10-05 17:4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람이 향내나는 곳에 있으면 그 사람의 몸에도 향내가 배어 향내가 나게 되고, 악취 나는 곳에 있으면 악취가 배게 되어 악취가 나는 법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환경 속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행로가 바뀌기 때문이다.

1994년의 일이니까 지금부터 19년 전의 일이다. 내가 유성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 잊지 못할 또 다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학교에 오면 잠만 자는 이현우 군. 현우는 등교하면 잠만 자는 학생이었다.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았고 수업하다 말고 도망가는 일은 더구나 없었다. 가방에는 사복(私服)과 가발(假髮)만 들어 있고 책이나 공책은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현우가 상담을 요청해 왔을 때 나는 태권도를 권하여 취미를 붙이게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이던가 3교시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서 쉬고 있는데 현우가 가방을 들고 나에게 왔다.



"선생님. 저 학교에 안 다닐래요."

"아니 왜?" 나는 깜짝 놀라서 의아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 보았다.

그런 그가 학교에 안 다닌다니 의아할 밖에.

"N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잔다고 복도에 나가 서 있으래요."

"그래?" 난 현우를 데리고 N 교사에게 갔다. 마침 교무실에 계셨다.

"N 선생, 이 아이를 복도에 내쫓지 마세요."

"아니, 이놈은 수업시간에 잠만 자고 있어요. 공부하러 온 애가 공부를 해야지 잠만 자서 되겠어요? 과장님은 늘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감싸니까 아이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요."

나는 N 교사를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현우 어머니는 일당 2만 원을 받고 식당에 일하러 나간다. 중학교 때는 늘 가출을 하거나 결석을 자주 하여 현우가 학교엘 가지 않으면 찾으러 다니느라 2만 원짜리 일당도 못하게 되어 생계가 어려웠다고 한다. 다행히 고등학교 입학한 후부터 학교는 빠지지 않고 다녀 어머니가 일하는데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현우가 학교에 와서 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그 집안이 편하게 되고 어머니는 맘 놓고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현우 어머니는 아침에 출근할 때면 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 현우의 등교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현우가 학교에 나와 잠을 자고 있다면 맘을 놓고 일하러 가는 것이다.

현우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이다. 어머니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등교를 하는 것이지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오는 아이는 아닌 것이다. 내 말을 들은 N 교사는 이해를 한 듯 내쫓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현우야, N 선생님 말씀 들었지? 어서 가 자거라."

현우는 기가 살아서(?) 교실로 갔다. 4교시 수업을 들어가며 엿보았더니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현우가 보였다. 잠자는 현우의 모습에서 효도하는 방법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오기 싫은 학교에 등교하여 잠만 자는 현우. 매일 잠만 자기가 얼마나 지겨웠겠는가? 현우의 남은 학교생활과 졸업할 때까지의 일은 여기에 적지 않으려니와 그 후 현우는 3년 동안 잠만 자고 졸업장을 받고 나가, 현역으로 육군 복무를 마치고 지금은 태권도 사범으로 남미 어느 나라엔가 나가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편지에는 엄마는 식당에 출근하시지 않고 제가 외국에서 번 돈으로 조그만 슈퍼를 내드려 즐겁게 사신다 했다.

"형사?"

잠만 자던 아이가 무슨 실력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태권도가 4단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장에 잠만 잤다고 씌어 있지는 않다.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잠만 잔 인내심으로 보아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꼭 성공하고야 말 것이다. 태권도 4단에 고등학교 졸업장이면 무술계통엔 특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학교에 등교해 잠만 자던 현우가 새삼 그립다.

'그렇지, 잠만 자는 것도 현우 네가 할 수 있는 효도였지.'

김용복 / 극작가, 평론가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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