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경찰학회장 |
하지만 이러한 경찰 운용은 당장의 현안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에 급급하고 사후반응적(reactive)이어서 이미 발생한 피해를 원상회복하지는 못한다. 특히 사건을 양산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다 보니 모방범죄 등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수록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늘어가고, 경찰관들조차도 많은 시간을 신고를 기다리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지치고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의경제도 폐지로 경찰력의 양적 투입을 통한 치안활동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빠듯한 국가재정에 경찰관을 무한정 늘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강력한 공권력 확보를 위해 '경찰관 1인 1권총'을 소지하는 정책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좋겠다. 소위 문제지향적 경찰활동(problem-oriented policing)을 통해 범죄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정조준할 필요가 있다.
문제지향적 경찰활동은 범죄나 무질서라는 증상(symptom)에 대증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그 원인(causes)을 찾아 범죄와 무질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찰철학이다. 구멍에서 무한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망치로 때려잡는 두더지 게임에서는 결국 망치를 든 사람이 진다. 사회 곳곳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범죄와 무질서에 대응인력 투입 위주로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현장경찰 중심의 경찰조직 개편 움직임이 이러한 대안적 경찰철학과 연계된다면 정책효과를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국민 불안을 급하게 해소하려는 단기의 정책목표만 가지고 출동할 수 있는 경찰관 확보에만 머문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다. 이번 조직개편의 골자는 지구대·파출소와 112치안상황실을 통합·운영하여 기존의 사건중심의 신속대응 경찰활동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로 운영하는 특화된 범죄예방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장 중심 조직개편이 정책효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반 경찰기능도 가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의 정보기능의 경우는 피의자, 피해자, 목격자 등 현안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건의 저변에 놓인 지역 내의 근본적인 문제를 탐지하고 해결하려는 정책이나 전략의 생산과도 맞물려 돌아가는 식이다.
세상에 범죄는 한여름 모기처럼 넘쳐난다. 모기가 나타날 때마다 모기약을 뿌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웅덩이를 없애는 등 서식지를 줄여나가야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신고받고 출동하는 전통적 경찰운용은 범죄자와 범죄피해자를 오히려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하여 범인을 체포하고 처벌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데 치중할 뿐, 발생한 사건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공동체는 범죄와 무질서의 오징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민의 신고에 대증적 조치만 해 왔다면 이제는 경찰출동을 요청하게 된 지역사회의 문제를 파악하여 이를 영구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안을 찾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경찰조직과 경찰을 둘러싼 경찰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나은 치안여건을 자랑하지만 범죄발생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안한 국민들의 화급한 요구에 당장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불가피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치안전문가임을 자부하는 경찰지휘부와 경찰정책가들만큼은 중장기적 안목과 철학을 가지고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는 충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전 한국경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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