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성 연극평론가 |
올해는 특히나 동남아 및 중동지역의 해외초청작까지 초청되어, 다양한 각국의 문화와 역사, 그 시대 정신을 짚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물론 여전히 지역의 관객에게는 해외공연작품에 대한 언어적 제약, 무대화된 세계의 이질감으로 '연극의 세계'에 대한 문턱에 더해 어렵고 부담스러운 무대라는 선입견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대개 공연축제처럼 서사적 장르보다는 비언어적 요소의 무대들, 넌버벌 작품들로만 채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과감하게도 형식적으로나 내용상으로 다양한 각국의 연극작품을 소개하면서 그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호흡으로 그 무대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지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품 자막이나,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이전보다 질적으로 개선되는 등 훨씬 객석의 거리가 좁혀졌다.
한국연극사에서 1970년대의 도전과 실험의 소극장운동은 무척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소극장'이라는 특정 공간의 태동은 새로운 실험을 유도하고 그로부터 예술 형식,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갔다. '소극장'은 연극 전용 공연장의 부재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국가주도의 '문예진흥정책'에 따라 동원된 창작극, 즉 예술적 자율성과는 거리가 먼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소극장운동의 정신에는 세계에 대한 양면적이고 분열적인, 또한 종속도 이입도 거부하지 않는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면서 저항적이며 실험적인 성격을 띠는 비상업적 소극장연극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소극장은 보통은 150석 내외의 극장으로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매우 밀접해 연극에 더 몰입할 수 있고, 그 차별화된 무대는 더 섬세하고 실험적인 공연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소극장의 연극에서 창작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며 자율성에 기반을 둔 소극장을 통해 본연의 연극에 대한 이해와 체험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연극문화를 체득해간다.
특히 이번 연극제 초청된 이란의 <Ala>나 이라크 <Amal>은 연극을 통해 이전 아랍세계에 대한 고립, 단절된 인식에서 벗어나 그 세계에 대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감각화, 공통으로 '전쟁'에 대한 잔상과 분열의 트라우마를 가진 그 사회에 관한 이야기로 공동체의 기억을 외부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Amal>에서는 극 중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낙태하기로 한 아내 아말과 남편 바심의 심리적 갈등이 강렬하게 전달된다. 얕은 수조 안에 폐허가 된 거실, 무너져가는 책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그 '죽음의 사회'에 들어가게 돼. 이 세계의 삶은 육체적으로 죽거나, 억압으로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맙소사, 내 아이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내 배를 도려낼까?"라는 아말의 말은 파괴적 전쟁, 극단주의적 사회구조에서의 심리적 위기를 보여주면서 압도적인 극적 형상화를 통해 당사자적인 고통, 그 감정을 발산해내고 있다.
관객의 눈높이에서는 어떤 공공극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규모의 스케일', 지명도 있는 흥행작품에 압도되어 소극장 연극을 협소하고 편향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소극장연극의 작품이야말로 이러한 이질감을 좁힐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규모의 스케일'이 아닌 '상상의 스케일'을 배울 수 있는 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능한 한 많이 그 상상의 세계에 경험과 공감으로 그 문제의 연극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문턱을 낮추는 것은 무대 위의 그들만이 아니라, 무대를 드나드는 나, 우리의 걸음에 있다.
조훈성 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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