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추분에는 벼락이 사라지고 벌레는 땅속으로 숨고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추분을 즈음하여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추분을 지나면 천고마비(天高馬肥)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사자성어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그만큼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는 것이다. 마침맞게(?) 필자는 최근 여섯 번째 저서를 냈다.
어제는 서울 사는 지인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필자의 신간이 전시된 모습을 인증사진으로 보내왔다. 순간 '정성은 거짓을 모른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흐뭇했다.
이처럼 저잣거리 장삼이사의 일상은 딱히 격랑이 없다. 그저 조그만 변화에도 일희일비하는 게 우리네 서민들의 평범한 삶이니까. 반면 정치권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면 금세 이맛살이 구겨진다.
야당 대표의 뜬금없는 단식투쟁은 논외로 친다. 하지만 대학원 입시방해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최강욱 의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 확정이 무려 44개월 만에 종착역에 닿았다는 뉴스는 합리적 의구심을 달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수혜의 대상은 과연 국회의원인가 아니면 법외의원(法外議員)인가?'우리 같은 소시민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과연 44개월이라는 장기간의 세월을 허송세월했을까!
국회 회기 중에도 의정활동보다는 정작 코인에 투자하는 데 더 열중한 의원은 내년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봐주었다.
또한 성희롱 발언 뒤 이른바'짤짤이 해명'을 한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 처분을 유야무야한 것도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을 가중시킨 어처구니없는, 그들만이 통하는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기지심(知己知心)의 절정을 보여준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코인 투자의 달인' 김남국 의원은 이 모(某) 교수가 쓴 논문을 들고나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이 "2022년 1월26일 논문을 이모(姨母)하고 같이 1 저자로 썼다"고 기염을 토했다가 망신을 자초했다.
중학생도 다 아는 이모(姨母)를 이 모(李某)로 착각한 건 과연 오판이었을까 아니면 의도된 '아니면 말고' 식의 저급한 찌르고 보기였을까?
이번에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의원은 이에 뒤질세라 한동훈 장관 딸이 복지관에 노트북을 기부했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확인해 보니 그 물품을 지급했다는 기증자가 한 아무개로 나왔다. 해당되는 것이 영리법인이라 나온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위원님, 아까 한OO이라고 된 건 '한국쓰리엠' 같다. 영리 법인이라고 돼 있지 않나"라며 "제 딸 이름이 영리 법인일 순 없다"고 반박하면서 마찬가지로 개망신을 스스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톺아보면 그렇지 않음을 쉬이 발견하게 된다. 최강욱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44개월 만에 원심판결 확정이라는 현실은 무려 4년 가까이나 국회의원이라는 신분과 각종 혜택을 주렁주렁 훈장처럼 달게 만들어 준 동력이었다.
또한 그에게 지급된 각종 특권과 세비 등을 합치면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음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 그 돈이면 지금도 배를 곯고 있는 많은 서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견인데, 앞으로 범죄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에게는 세비 지급과 국회의원에 대한 각종 특혜까지 재판 기간 중에는 일시 중단하는 안을 시급히 도입하여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추분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듯 국민이 보는 정치인의 자격과 품격도 같아져야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비판까지 불식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홍경석/ 작가, 장편소설 <평행선> 저자
홍경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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