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윤석열 정부의 ‘반(反)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길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윤석열 정부의 ‘반(反)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길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23-09-21 10:38
  • 신문게재 2023-09-22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30년 전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 후안 린츠(Juan Linz) 교수는 '대통령중심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라는 논문을 통해 대통령제의 치명적인 약점을 지적했다. 불신임투표를 통해 내각을 해체할 수 있는 의회중심제와는 달리 대통령중심제는 대통령이 문제가 있더라도 임기 중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대통령중심제는 의회중심제보다 선거를 통해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권력을 잡고 정치를 개인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성 정치에 좌절한 국민이 참신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선택한 인물이 자칫 극단적 이념에 사로잡히는 경우 그 사회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이 가속화된다.

린츠 교수의 경고는 최근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통해 확인된다. 국민은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과 기성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 속에서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던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은 국민이 기대한 신선한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라는 '냉전(冷戰) 자유주의'의 이분법적 이념을 소환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가진 국민과 언론을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하는 반국가주의 세력으로 낙인찍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 수호 전략은 '반(反)자유주의적'(anti-liberal) 민주주의로 압축된다.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선거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지만, 자유주의의 중요한 제도적 원칙을 의도적이고 반복적이며 체계적으로 배제하거나 위반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탄탄한 자유주의 제도적 기반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 제도의 핵심 원리는 다원성(pluralism), 시민의 자유(civil liberty), 법의 통치(rule of law)를 포함한다.

다원성은 사회의 정치적·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단일 차원의 질서나 제도로 귀결될 수 없고,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원적인 사회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이 시민의 충분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선호 형성을 위해 필요한 권리를 국가가 보호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시민의 자유 없이는 다원적인 사회의 출현은 바랄 수 없고, 시민의 선호가 적극적으로 형성되고 표현되는 민주적 과정도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법의 통치는 자의적인 국가 행위와 다수의 독재로부터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한다. 권력을 제약하는 법의 통치가 부재할 때, 권력자의 '법에 의한 통치'로 대체되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된다.



윤석열 정부의 반자유주의적 정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다양한 가치를 두고 이미 다원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에 구시대의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고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 양분하면서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 시민과 집단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배제하거나 차별한다. 구체적으로 진보시민단체를 반국가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는 한편, 보수시민단체를 정치에 동원하고 스스럼없이 지원하는 모습은 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국가의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시민 권리의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진행되는 마구잡이식 언론장악 시도는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민주주의 기반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경쟁 정당에 대한 존중의 정치적 자유주의 덕목은 고사하고, 야당을 피의자로 대하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는 어느 정권보다도 심각한 적대적 여야관계를 만들고 있다. '윤심'을 내세워 여당의 지도부를 장악하고 공천권으로 의원들을 줄 세우면서 행정수반의 권력 견제를 위한 자유주의의 대표적 제도인 국회는 무력화된다. 대통령의 호위 무사를 연상시키는 검찰은 '법의 통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의 상징이 되면서 야당을 포함한 정치적 비판 세력을 압박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윤석열 정부의 반자유주의 정치가 한국 사회에 남길 상처와 비용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할 것이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