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타이 선박여행은 각자 목적은 달라도 여객선을 자주 이용하는 일행끼리는 옌타이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정겹고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선박여행은 추억 속의 여행지가 되고 말았다.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선박여행에 관한 소식조차 끊겼다. 연일 여행객으로 북적대던 항구가 조용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2023년 올해 여름 옌타이행 국제여객선이 재개되었다고 폰문자가 왔다. 나는 즉시 인터넷창을 열고 "생생(생생여행클럽카페"로 들어갔다.
내가 뜸한 사이에 카페 내 '생생정보 소식란'에는 석도, 청도, 위해, 옌타이 여행 등 중국 여행에 관한 정보가 빼곡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옌타이 해변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때는 산둥성 지방에 「韓中외국어학원」을 개업하려고 여행 겸 매달 갔던 곳인데도 어느새 먼 추억이 돼버리다니 한편 씁쓸했다.
그 당시는 주말을 이용해서 시간만 나면 갔었다. 1년 상용비자를 받아서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3박 4일이었지만 푸른 바다를 보며 육지에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낭만과 비즈니스를 꿈꾸던 곳이었다. 옌타이에서 1박을 한 후 오후 늦게 인천행 여객선에 승선, 이튿날 다시 일출을 바라볼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한다. 따뜻함을 안고 돌아가는 것 말이다.
하기는 여행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대개 3박4일 일정으로 선상에서 1박 하며 새벽녘 일출을 보는 것이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며 바다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일 때 그 장관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순간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후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9시경 옌타이항에 입국하여, 옌타이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시 저녁 4시경 승선하는 일정이었다.
사실 대전에서 인천항까지 오가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도 평상시에도 내가 굳이 선박여행을 선호하는 것은 새벽녘 해돋이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밤중 선창 밖을 내다보면 내가 승선한 향설란(XXL)은 마치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와도 같다. 물론 파도가 높지 않을 때이지만.
이튿날 아침 옌타이항에 도착했을 때는 바다도 새롭게 보였다. 입국장을 나와 부둣가에 즐비한 허름한 상점을 보면서도 낙후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네 시골 같은 느낌을 받아 더욱 정겨웠던 것 같다. 지난주 첫 항차로 갔다 왔다는 회원 후기를 읽어보니 그동안 많이 변했다고는 한다. 아무튼 내가 자주 갔을 때 나는 꼭 가야 할 곳도 없기에 부둣가 상점 몇 군데를 둘러볼 정도였다. 건물이 붙어있는 상가를 드나드는데도 괜스레 신바람이 났었다.
부두를 나와서 바로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호텔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가격은 1위안이다. 매번 느끼지만 중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공짜인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호텔은 그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호텔 역시 낯설지가 않았다. 호텔 방으로 올라와 녹차를 한 잔 끓여 마신 후 다시 밖으로 나와, 그곳에서 중심가까지는 걸어 나왔다.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 7위안으로 저렴하다. 그러나 지난밤 선상에서 있었기에 맑은 공기도 쏘일 겸 걷고 싶어서였다. 내가 옌타이를 자주 갔던 것은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국에서도 내 나라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 말이다.
옌타이는 발해만에 인접해 있는 작은 해안 도시로 시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다. 가깝게는 산도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산행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옌타이 기차역에서는 청도나 북경 등 거의 모든 도시를 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심가에 있는 싼잔 시장은 산둥성 지방에서 제법 큰 규모의 소, 도매 재래시장으로 우리나라 상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시장을 들러 구경하고 나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인근에서 즐겨 먹던 만두를 사 먹고 단골 안마 집으로 갔다. 마침 오전에 주인 여자를 부두에서 만났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안마를 받으며 서툰 중국어로 그동안 남 백두산과 청도에 갔다 온 이야기를 더듬더듬 말했다. 주인 여자는 사뭇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를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가까운 청도(??)조차도 못 가봤다고 했었다.
이렇듯 나의 해돋이 여행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우리와 다른 문화를 탐닉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일들… 그리곤 지루할때 마다 메모지를 들춰보듯 꺼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옌타이에서 1박을 한 후 오후 늦게 인천행 여객선에 승선, 이튿날 다시 해돋이를 바라볼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한다. 따뜻함을 안고 돌아가는 것 말이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제2의 고향 같은 그곳, 옌타이(烟台)에 간다면 그때의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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