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슬픈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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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슬픈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

  • 승인 2023-09-19 17:15
  • 신문게재 2023-09-2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김욱 배재대학교 총장
김욱 배재대 총장
한국의 대학은 서열이 있다. 물론 다른 나라 대학에도 서열이 있지만, 한국 대학의 서열은 유난히도 뚜렷하다. 뚜렷한 서열의 존재는 워낙 한국 사회가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서열이 교육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결정된다는 데에 있다.

우수한 교수진의 확보,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의 제공 등과 같은 교육적 요인은 대학의 서열과 생존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립이냐 사립이냐, 4년제 대학이냐 전문대학이냐, 수도권대학이냐 지방대학이냐, 이러한 것들이 한국 대학의 서열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대학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대학 서열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회자되었다. 게다가 많은 대학들의 홍보물에서도 대놓고 자기 대학의 위치와 교통의 편리성을 앞세우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지, 무슨 역에서 몇 분 거리에 있다든지, 이러한 홍보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치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는 듯하다.

물론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간의 서열 격차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방분권화이다. 그러나 지방분권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대학의 서열이 결정되는 또 다른 숨은 이유는 바로 대학 교육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 대학에서 교육의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대학의 차별성이 없으니, 수험생들은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하게 되고, 그에 따라 대학의 서열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대학들에서는 교육의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정부의 잘못된 고등교육 정책과 불필요한 규제에 있다. 한국 정부 예산 중 고등교육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예산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정부 예산에는 늘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그렇게 쓰면 안 된다.

물론 정부 예산에 붙는 꼬리표에는 나름 명분이 있다. 교육 혁신을 위해서, 대학의 특성화를 위해서, 혹은 특정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꼬리표의 실질적 효과는 대학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와 통제이다. 대학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침해함으로써 오히려 대학의 진정한 혁신과 특성화를 통한 대학 교육의 차별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정책의 목표와 실질적 효과는 다르기 마련이다. 교육 혁신과 특성화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혁신과 차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과 고등교육의 본질은 자율성과 창의성에 있다. 그런데 정부가 어떤 목표를 제시하고 대학들을 그 쪽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에서는 불필요한 대학 규제를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실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앞으로 고등교육에 있어서 정부가 할 일은 예산을 대폭 늘리고, 예산 지원에 대한 꼬리표를 없애고, 대학들이 각자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혁신하고 자신들의 강점을 살려 차별화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이다. 대학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대학의 생존을 위한 혁신을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정부 공무원이 아니라 바로 대학 구성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욱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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