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
그런데 그다음 뉴스 기사는 더 가관이었다.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 모던하고 시크한 미드센츄리 모던 인테리어, 미니멀한 모던함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 블랙 오브제로 완성하는 인테리어를 경험하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는 명색이 미국 생활 8년의 영어교육 전공 교수인데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국적 불명의 외국어에 까막눈 된 사람들이 증가 추세에 있다더니 바로 내가 그랬다. 그날 오후, 필자는 이 문장을 20대 대학생 20명에게 보여주며 정확한 의미 파악에 대한 간이 설문을 했다. 그 결과, 80%가 넘는 학생들이 이 문장의 뜻을 정확히 해독할 수 없었고 그저 좋은 인테리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해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온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러프하게 말해서 올해 한국 경제를 클리어하게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경제위기에 대한 대비를 컨퍼메이션해야 합니다." 아니 국내 최고 학자인 교수님이 공영방송에서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러프하게 말해서'를 '대충 말해서'로, '클리어'는 '명확하게'로, '컴퍼메이션'은 '확인'이라고 말하면 급이 떨어지게 들리는 걸까?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 쓰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신조어가 생산됐다. 예를 들어, 한 뉴스에서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코로나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언택트 문화와 웰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얼마나 많은 연령층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감염병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비접촉 문화와 참살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을 하면 이해도가 떨어질까?
그런데 이런 무분별한 영어 차용을 부추기는 주범은 바로 정부인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의 명칭들을 살펴보면, '한국판 뉴딜 2.0,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면 뉴딜, 규제 샌드박스, 스튜어드십 코드, 패스트트랙, 문화 뉴딜 등이 있다.
더군다나 우리말을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교육부는 ‘뜻 모를 콩글리시'를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교육부가 8월 한 달 동안 발표한 전체 보도자료 가운데 65%가 '영어 오남용' 사례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보도자료에서 '미디어, 포스트, 그린 스마트 스쿨, 바이오, 크라우드 펀딩, 에듀테크 멘토링, 학습 컨설팅, 블렌디드 수업 지원, 테크 매니저, 학습플렛폼 고도화, 협력모델, 포스트 코로나시대’ 등의 용어를 남발하고 있었다. 가까운 충남도에서도 '차량용 팹리스 생태계,' 충남소방본부의 '라이프 세이버,' 충남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인센티브' 정책 등 다양한 영어 차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를 우리말에 뒤섞어 사용하는 추세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의 대중 매체와 포장지, 간판, 음식점 차림표 등의 실생활 속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무분별한 영어 차용 현상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영어 오남용으로 인한 세대 간 이해도의 격차는 정보 소외, 세대 단절 등으로 이어져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 될 것이다.
영어를 차용하면 고급스럽게 들리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물론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만국 공용어인 영어의 높은 구사력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긴 하다. 그렇지만 영어를 탁월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모국어 능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국가는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규정한 국어기본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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