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내 손안의 '멋진 신세계'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내 손안의 '멋진 신세계'

  • 승인 2023-09-18 08:54
  • 신문게재 2023-09-19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이성만 교수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손안이든 주머니속이든 스마트폰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스마트폰이 세상으로 가는 우리 모두의 탯줄이 된 것이다. 15여 년 전의 아이폰 출시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이른바 혁명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지난 날, 낯선 마을에 가면 으레 길을 물어야 했다. 기차나 고속버스의 다음 연결 편을 알려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에 직접 가서 시간표를 확인해야 했다. 추석 귀향 기차표 예매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게다가 우리는 언제나 몇 개의 기기를 휴대했다. 무선호출기 삐삐, 이동 중에 음악을 듣는 워크맨이나 MP3 플레이어, 사진용 카메라 같은 기기들 말이다. 나만의 기기에 숨은 데이터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02년에 이런 기능 중 일부를 통합할 수 있는 휴대폰이 등장했다. 이메일을 읽고 쓸 수 있는 '블랙베리' 폰은 관리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지위의 상징이었다. 기존 휴대폰의 T9 기능에 실망한 이들도 처음으로 쿼티 키보드에서 텍스트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세계'는 2007년 1월 9일에 탄생했다.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의 <Macworld Conference & Expo>에서 마우스 클릭이 아닌 손가락 터치로 바꾼 아이폰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용하기도 쉽고 직감적으로 조작이 가능했다. 모바일 폰이 내 손안의 미니컴퓨터, 곧 셰익스피어가 말한 'O brave new world'로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brave'은 중세 영어다. 애플은 이렇게 세계 최상의 브랜드로 등극했다. 아이폰은 2007년 전 세계에서 1억 2200만대, 2016년에는 약 15억 대가 팔렸다. 이제 아이폰이든 삼성폰이든 스마트폰은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다. 내 손안의 '혁명적인' 스마트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기에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뒤집어 놓았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최소 200번은 스마트폰을 뒤적거린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우리를 '가상 기계 인간'으로 만든 셈이다. 이건 첫 단계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iWatch 같은 두 번째 웨어러블 기기를 넘어 도어록을 여는 칩을 이식했고 파운데이션 모델도 다양하게 응용중이다. 여기서부터 사이보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제 우리는 평가받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하는 모든 것, 사용하는 앱에 따라 엄청난 양의 데이터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예측 가능해졌고, 알고리즘들은 우리의 미래의 의도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작은 것들에 예속된 셈이다. 이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1분도 살 수 없다. 그래서 "노모포비아", "아이디스오더", "유령진동증후군"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16세기에 이미 파라셀수스는 "용량이 독성을 결정한다."는 기본 원리를 알고 있었다. 올더스 헉슬리도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빗댄 제목의 소설 <Brave New World>(1932)에서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반유토피아적 세계를 그렸다. 문명사회에서 성장한 린다가 인디언 보호 구역에 놀러갔다가 계곡에 추락하여 인디언들의 구원을 받고 존을 출산한다. 그러나 야만사회의 생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비참한 삶을 산다. 그러나 린다와 존은 문명사회인 멋진 신세계로 돌아가는데, 원시의 삶을 누린 존은 육체적 행복은 보장되지만 인간의 탐구적·창조적 과학은 불가능한 문명의 삶에는 적응하지 못한다. 헉슬리가 그린 것은 과학의 진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이런 '멋진 신세계'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지만, 그 공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니 내 손안의 '멋진 신세계'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디지털 미래를 바르게 기억하고 의식하는 건실한 정념의 차원에서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