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앞에서는 서구청 환경미화원 쓰레기 수거차량이 엔진 소리를 요란스레 주변을 자극하고 있었다.
수거 차량 앞에는 이순(耳順)쯤 돼 보이는 환경미화원아저씨가 날이 추웠던지 매사냥꾼 모자를 뒤집어쓰고, 악취가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빛바랜 점퍼에 추레한 모습이었지만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왜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마중물의 삶을 실천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향까지 풍기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순간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삐 서두르고 있던 청년 하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 하는 것이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씩 웃으며 대견스러운 듯 "응, 우리 막내 아르바이트 가는구나."
"아버지, 몸도 편찮으신데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지, 가을 점퍼가 뭐요!"
그때 마침 예서제서 수거물을 들고 나온 아낙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로 한 마디씩 하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말 가운데에는 내 듣지 말았어야 좋았을, 안타까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 글쎄, 저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위암 2기말 환자래"하는 거였다.
"몸소 저렇게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어 아픈 몸 끌고 나와 저리 일하고 있는 거래. 딸 셋 있는 거 전문대학까지 졸업시켜 다 시집보냈고, 이제 남은 건 막내아들 취직시켜 장가보내는 일만 남았대. 그래서 저렇게 아픈 몸으로 측은하게 일하고 있잖아. 저 청년이 바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 아들 같은데 한 푼이라도 벌어서 아버지 도우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걸 보면 효자가 따로 없구먼" 하는 거였다.
''아버지!' 하는 소리에 씩 웃는 아저씨는, 아들이 내심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던 거 같았다.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오물 수거) 을 당신이 하는 것을 보고서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한 기색 없이 당당한 아들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훌륭한 건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은 이런 걸 두고 일러 하는 말 같았다.
세월은 흘러 어언 6개월이 지났다. 주변에 환경미화원아저씨를 잘 아는 지인 하나가 그 집에 경사가 있어 다녀왔다고 했다. 그날이 바로 환경미화원아저씨 막내아들 장가가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환경미화원 아버지는 막내아들 장가가는 날, 피로연석에서 축하해주러 온 하객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앓던 이가 빠졌다며 막걸리 한 잔 들이키더니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는 거였다.
그러던 그 아저씨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막내아들 장가보낸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세상을 떴다는 얘기가 어렵게 말꼬리를 잇고 있었다.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은 아저씨가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동안 오물 처리 수거차량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데도 아저씨가 보이지 않아 내심 궁금했는데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다.
인생사 일장춘몽이라더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아저씨가 아픈 몸으로 눕지도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 일을 한 걸 보면, 그건 순전히 자신의 부양가족 때문이었다. 그는 부인을 비롯한 당신이 뿌린 씨앗(4남매)을 부양하고 가르쳐서 시집장가 보내야 하는 일이 마냥 짐이 됐던 거였다. 그 일을 다해야 당신의 책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죽는 날까지 사력을 다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살아있음은 딸린 식솔들이 있었기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심정이었으리라.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가꾸고 챙겨서 결실을 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렇게 어려운 인생을 살았던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눈을 감지 못 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으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나도 파란만장한 세파 속에 허덕이며 좌절도, 절망도, 숱하게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또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해 본 회수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내 살아 있음은 나의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아,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헤일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감사할 일은 감사할 일로 보답해야 하는데, 그 일 또한 시간이 부족할 정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아직까지 살아 있음은 나만이 해야 할 일들이 숱하게 이리 많아 죽을 시간도 없음일러라.
내 아직 살아 있음은
인생 설한풍 눈보라 속에서도
내 꺼지지 않고 아직 살아 있음은,
내 안에,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할 사람이 있음이요.
넘어지고 깨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내 먼 길 가지 못하고 아직 살아 있음은
내 안에, 이 못난이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있음에서요.
참아내기 그 어려운 슬픔 속에서도
내 몰아쉬는 한숨으로 아직 살아 있음은
내 안에,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사람이 있음이로다.
내 모진 세파 속에 내 아직 살아 있음은
우리 모두 은원(恩怨)이 없이 서로의 장갑이 되어
사랑으로, 희로애락 함께하는 세상, 숙제로 남아있음이로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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