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재 교사 |
실제로 이 속담은 나의 교직생활의 중심이 되어 안온한 현실에 무던해지기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한 교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도록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나는 유아기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해진 교과목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기반으로 세상을 알아가고 배워갈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기에 더욱이 발전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끼'는 나를 고루하고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유해한 요소라 여기며 축축하고 눅눅한 이끼가 내 안에 발 디딜 틈이 없도록 바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그 당시 나는 현실적인 여러 요인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실천하지 못했고, 이를 무한 반복하며 나에겐 올 것 같지 않던 매너리즘을 겪게 됐다. 한 번 슬럼프에 빠지고 나니 그동안 쉽게 했던 모든 일이 버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정신적인 방전' 상태였던 것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필요가 아닌 의무감에 의해 움직이고 목표의식 없이 살았으니. 마치 탈선한 열차처럼 나는 그렇게 길과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비탈길로 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최근 연달아 들려오는 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희생하신 선생님들의 노고와 슬픔에 애도의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고, 같은 교직에 있기에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에 속상함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라서 감수해야 했던 일들, '교사'이기 때문에 해야만 했던 일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선생님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끼' 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든 교사는 나름의 열정을 갖고 교직에 임하고 있을 텐데 과연 쉬지 않고 구르는 것만이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까? 이끼가 생기지 않는 것만이 행복한 교사가 되는 방법일까? 우리가 혹은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흥미 있는 댓글을 발견했다. 유명 영어강사가 특정 어학서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 하며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의 어원을 설명한 내용의 댓글이었다. 글에 따르면 원어인 "A rolling stone has no moss"에서 moss(이끼)는 사실 긍정적인 요소이며, 이끼는 성취, 재물, 연륜이므로 오히려 이끼가 생기도록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우물만 파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지만, 한국에서는 '나태함'을 채찍질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글은 읽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지며 그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강박관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비단 교직생활에만 해당하는 강박관념은 아니었다. 서점의 수많은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들은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알게 모르게 질타하고 있는 듯했고 노력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에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박일관의 학교혁신 2.0에서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도 학교의 존재 이유도 교권의 존재 근거도 모두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이어야 하고, 이를 위한 출발점에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의 근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설명해준 글이다. 여기에 나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아이들에 대한 존중은 교사에 대한 존중 없이는 선행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교사를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사가 자신을 잘 알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외부에서 다양한 가치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끼'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가치에는 하나의 의미만 부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교사가, 나의 동료들이 외부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빛낼 수 있는 행복한 교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홍연재 내포유치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