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전 학장 |
스페인의 북서부 카탈누냐는 로마와 서고트, 프랑크왕국을 거쳐 독립된 지역이었다가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코의 카스티야왕국에 귀속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이 오늘날에도 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오랫동안 시위와 진압의 소요가 쉬지 않는 곳이다.
이곳 바르셀로나의 도시체계 면에서 두드러진 점은 매우 정교하게 구획된 도심지 에이샴플라 만자나스인데, 프랑스 파리에 계획가 오스만이 있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일데폰스 세르다가 있었다. 오스만은 파리를 정교하게 정돈하고 도시 흐름을 위한 포괄적 도시화라는 모범적인 체계를 만들었고, 스페인의 세르다는 규범과 질서 교통을 아우르며 공동체적 집합주거 개념의 학술적 도시체계를 만들어 냈다. 두 계획자는 공통으로 오늘날 도시확장에서 주요한 이론의 하나로 규율을 강조한 한마디로 건축 공동성의 시스템화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성벽이 무너지고 도시가 확장된 바로 이곳 바르셀로나의 앙상쉐지구 한복판에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교회)가 우뚝 서 있다. 이 가족 성당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은 구엘공원과 가우디의 기상천외한 천재적 건축을 잘 기억해 낸다. 그러나 이 배경의 주인공 가우디의 상상의 세계 주위에는 세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불운의 건축가 세르다가 있음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확장될 때 가문의 전 재산을 이곳에 투입하여 오늘날의 아파트처럼 기본적으로 반복 가능하고 규율을 지닌 블록 형태의 건축에 몰두하여 오스만보다도 더 공동성이 강한 주거 유형을 완성한다. 비록 파산에 이르렀지만, 그의 업적은 전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도시확장체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세르다의 도시체계는 당시로써 획기적인 도시철도계획과 도시홍수에 대비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보행과 차의 연결체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논지를 적용해 오늘날 도시 네트워크란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적절한 계획을 수립한 것이었다. 때론 규율은 한심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성으로 인해 개성을 잃기 쉬운 것이기도 하고 열정에 밀려 창작력이 적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열정에 밀린 규율은 곧잘 큐비즘으로 잘 알려진 두명의 화가 피카소와 조르쥬 브라크를 통해 비유되고 있다. 같은 장르이나 어딘지 모르게 규율에 얽매인 듯한 브라크의 작품에 비해 피카소의 입체화는 자유롭고 열정을 지닌 풍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림과 달리 도시는 엄격히 다른 규율과 규칙이 요구되고 다른 표현으론 공동성을 중시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아주 간단한 증명으로 이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는데 도시를 보고 감탄하는 배경에는 물론 시각적인 구조와 경험의 배경이 중시되지만, 공동성의 표출이 이뤄진 예에서 알 수 있다. 화산폭발로 여러 조각으로 나뉜 그리스 산토리니섬이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 같은 마을들에서 아름다움과 동경을 느끼게 되는데 도시를 구조적으로 보면 규범이 존재하는 공동성의 실현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자유로운 형식 안에서도 유지되는 규칙은 제약이기보다는 존중이고 철칙이기보다는 편안함과 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의 잔잔한 도시 물결과 에이샴플라 만자나스의 도시 물결은 바로 이런 공동성의 약속이 이룬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대도시는 이미 이런 형식을 이어가기에는 멀리 떠나왔지만, 국지적으로 작은 단위의 도시를 만들어가는 아직도 남겨진 곳들은 도시건축의 공동성에 대해 새삼 노력해볼 일이다.
/김병윤 전 대전대 디자인아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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