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단장 |
한국의 대표적인 효행설화 '심청전'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딸에게만 의지하는 눈먼 아버지에게서 잠시 짜증이 났고, 심술궂은 뺑덕어멈의 얌체짓을 바라보며 미운 생각이 들긴 했어도, 감동적인 심청의 효심을 넘지는 못했다. 묵묵히 부친 위해 애쓰는 심청의 아름다운 마음과 행동이 작품 전체를 감싸 안았다. 공양미 삼 백석으로 심청이를 안내한 스님이나 인신을 제물로 바친 뱃사람들의 행동 등이 인신매매범들이나 하는 엽기적 행동이라 상상도 안 했다. 오로지 시종일관 순수한 심청의 효심만을 생각했고, 왕비로 환생한 심청이 안타까이 아비를 찾는 가운데, 어렵게 찾아온 아비가 눈을 떴다는 극적 반전 만이 생각을 지배했다.
옛날이야기 속 내용 자체에서 긍정, 희망, 상상의 나래를 펼칠 뿐, 이를 사회적, 법률적 관점에서 꼬치꼬치 캐물으며 문제 삼지 않았다. 또 그것이 아이들 동심의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동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선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선녀와 나무꾼'의 영향으로 성폭력이 난무하고, '심청전' 때문에 인신매매가 성행한다는 것은 애당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동화나 전통 설화 속 이야기는 당대 문화와 가치로 해석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합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당연히 엽기적 행위들에 해당한다. 이는 동양만의 문제가 아닌 동서양 모두가 마찬가지다. 과학적, 합리적 관점에서 이솝우화를 대한다면 당연히 아이들에게 이솝우화는 금서가 되어야 한다. 의인화한 동물들을 이해할 땐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동심을 일깨우는 교육의 한 방법이다. 설화도 마찬가지다. 당대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화를 대해야 할 이유이다.
효행설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대개가 고마운 존재로 나온다. 산속에서 3년상을 치르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보호했다는 이야기나, 병든 부모 위해 꿩과 사슴을 잡아다 주었다는 이야기, 밤길 가는 효자의 길을 안내했다는 이야기 등등. 대전지역 은진송씨 가문의 초창기 인물, 쌍청당 송유가 강보에 싸여 대전으로 내려올 때의 일이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읜 유씨가 어린 아들 송유를 데리고 개성에서 시댁 대전으로 내려오는 데에는 주로 밤길을 이용했다. 청상이 된 유 씨 입장에서 이런저런 낮에 부딪힐 수 있는 일들보다는 밤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밤마다 길을 재촉하는 가운데, 별안간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다는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호랑이는 호시탐탐 생명체를 노리는 맹수이다. 그런데도 효행설화에 등장한 호랑이는 효자의 효성에 감동한 조력자가 많다. 아마도 한국인의 긍정 심리학에 기인한 설화적 기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차피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았다면, 죽은 목숨 살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주변에 앉아서 바라만 보고 해치지 않았다면, 호랑이는 사람을 보호한 영물이 된다. 3년상을 치르는데 호랑이가 해치지 않고 주변만 어슬렁어슬렁 배회했다면, 효자를 보호한 고마운 존재가 된다.
이렇게 긍정의 상상력으로 해석하고 이해한 우리 전통의 효문화를 삭막한 현대사회의 극단적 범죄심리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동심을 일깨웠던 효행동화 속 전승설화가 범죄심리를 조장한다고 문제 삼는 것은 동심의 세계를 오히려 해치는 일이다. 어려움도 오히려 긍정의 상상력으로 극복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아쉽다. 동화는 동화, 설화는 설화로서 당시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긍정의 상상력으로 이해할 이유이다.
/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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