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작, 주부자시의도 |
세화는 조선 세시풍속의 하나로, 새해 축하와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라고도 한다. 궁중에서는 화원이 그려 진상하였고, 임금은 대부분 그림을 신하에게 하사하였다. 도화서 화원은 20여 장, 임시 고용된 차비대령(差備待令) 화원은 30여 장씩 각각 그렸다 한다.
<주부자시의도> 시는 주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대학> 이념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의 통치이념은 성리학이다. 특히 정조는 나라의 통치규범으로 <대학>을 중하게 여겼다. 명명덕(明明德)에 사로잡힌 까닭이다. 밝은 덕이 성인정치의 재현이요, 명덕이 이루어지면, 신민(親民)과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절로 이루어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1800년 1월 1일은 정조가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도록 명한 날이기도 하다. 그림은 어람용으로 2월 2일에 있은 세자 책봉례와 관례에 쓰이기도 했다.
그림에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가 차례로 펼쳐진다. 작아서 보기 어렵겠지만, 그림과 글을 함께 감상해보자. 사유가 시로 옮겨지고, 시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과정이 읽혀지면 좋겠다. 주자의 원시와 웅화의 주 번역문은 장혜숙의 글 <김홍도의 주부자시의도>에서 옮긴 것이다. 폭은 보기에 그림의 우로부터이다.
2폭 춘수부함도(春水浮艦圖), 글을 읽고 느껴 짓다(觀書有感) / 어젯밤 강가에 봄물이 일더니만 / 싸움배 거함조차 터럭 한 올인 양 가볍네. / 그동안 밀고 옮기려 들인 힘 잘못 애쓴 것이더니 / 오늘은 흐름 가운데 자재롭게 가는구나.
(웅화) 의리가 익은 때에 지(知)는 저절로 다다르게 되니 (만사가) 자연히 잘되어 간다.
3폭 만고청산도(萬古靑山圖), 만고에 푸르른 산(寄胡籍溪) / 둥근 들창 앞 편으로 푸르름이 병풍 되어 / 저녁 되어 마주하니 우주 만물이 고요하네. /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겨 한가롭게 책을 펴니 / 만고의 청산이야 다만 그저 푸르르네.
(웅화) 성의라는 것은 (마음에) 주재함이 있어 (사물의) 정동 간에 통하는 것이라.
4폭 월만수만도(月滿水滿圖), 무이도가 넷째굽이(武夷燿櫂歌第四曲) / 넷째 굽이 동서 양편에 큰 암벽 솟았는데 / 암벽 꽃엔 이슬 달리고 푸르름이 드리웠네 / 금빛 닭 울음 그친 후에 보는 이가 없으니 / 빈 산에 달빛 차고 못엔 물이 가득하네
(웅화) 정심이란 다만 어둡고 어리석지 않아 어지러움이 없음이라.
6폭 생조거상도(生朝擧觴圖), 어머니 생신 아침에 장수를 빌다(壽母生朝) / 공손하게 생신 아침에 한 잔 술 올리오니 / 짧은 노래 가락 그쳤어도 뜻은 따로 기옵니다. / 원하시는 말씀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들 손주의 편안함뿐 / 검은 머리 홍안으로 즐거움 길이 누리소서.
(웅화) 집을 다스리는 근본은 부모님께 공손함에 있다.
7폭 총탕맥반도(慈湯麥販圖), 채씨 부녀의 집(蒸氏婦家) / 국에 보리밥이 서로 잘 어울리니 / 파는 단전(丹田)을 길러 주고 보리는 주린 배 달래주네 / 이 가운데 무슨 재미냐고 말하지 마소 / 앞마을엔 오히려 밥 못 짓는 때도 있다고 하네
(웅화) 문왕(文王)은 백성의 고통을 자기 아픔처럼 여겨 추위에 얼고 굶주리는 일이 없게 하였다.
8폭 가가유름도(家家有凜圖), 석늠봉(石?峯) / 일흔 두 봉우리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 한 봉우리에 돌 노적가리라는 옛 이름이 전하누나 / 집집마다 노적가리 있어 높기가 그만하니 / 참 좋은 인간세상 쾌활한 세월일세.
(웅화) 백성이 부유하면 예의가 자리 잡히니 천하가 태평하리라.
마지막 그림은 곳곳에 노적가리가 높이 쌓이고, 집안에서 아기 보는 여인, 마당에서 추수하는 사람, 아이와 어울려 일하는 아낙들, 디딜방아와 절구질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태평성대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려 함이리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공부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유교경전 <대학>을 처음 배울 때 강의 듣는 것이 전부였다. 예전과 같이 암기하거나 임문(臨文), 배강(背講), 배송(背誦) 같은 강경(講經 또는 講書)은 없었다. 얼치기 세대이다 보니 한자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 이런 것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지나쳤던 것 같다. 선조들이 얼마나 지성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였는지, 그에 비하면 필자가 익힌 것은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는 넘치고 있지만, 깊이가 부족함을 종종 실감케 된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각근히 실천함은 물론,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으로 그려 곁에 두고 경계로 삼았다. 요즈음엔 어떠한가? 정치하는 사람에게 추구하는 이상, 구현하려는 노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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