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원장 |
사실 정찬성은 작년 4월 UFC 페더급 챔피언 볼카노프스키와의 타이틀전에서 TKO로 패한 후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은퇴를 시사했었다. 그때 그는 "어느 때보다 자신 있었고, 좋았는데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16년간 눈, 코, 어깨, 손목 등 갖은 수술을 받으며 성한 곳이 없던 그는 홀로웨이가 도전장을 내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옥타곤에 올라 코리안 좀비답게 맞으면서도 쓰러질 때까지 펀치를 휘둘렀다.
홀로웨이는 경기 후 정찬성을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정찬성은 전설이고 불가사의한 선수다. 내가 운이 좋았다"며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다. UFC는 이례적으로 패자가 퇴장할 때 그의 테마곡인 크랜베리스의 '좀비’를 틀었으며 정찬성은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 앞에서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옥타곤을 떠났다.
정찬성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든 걸 이루진 못했지만, 이룰 만큼 이뤘고 지금 상태에서 더 바라는 건 욕심 같아 멈추려고 한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난 3등, 4등 하려고 격투기 하는 게 아니라 챔피언이 목적인데, 톱랭커와 후회 없이 싸워 이기지 못했기에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이 화끈해 그냥 좋았었는데, 그의 라스트 댄스를 보며 나는 이제 그를 존경하게 됐다.
참 프로란 이런 것이다. 되지 못한 쌈꾼은 수많은 길거리 싸움에서 몇 명과 붙어 어떻게 이겼는지 떠벌린다. 정찬성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좀비트립’에서는 전국의 소문난 싸움꾼들을 찾아가 프로 선수와 스파링으로 실력을 검증한다. 시즌2에는 3600명의 지원자가 몰렸는데, 간혹 인정받는 도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훈련받은 프로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격투기 프로선수 박문호는 상대의 수준에 맞춰 스파링하고도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파이터, ‘섹시야마 추성훈’은 만 48살인데도 현역이다. 재일 한국인 3세인 추성훈은 유도선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일본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대학교 때 일본 실업팀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왔는데 그러려면 국적을 바꿔야 해서 한국에 건너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 전 경기 한판승 우승을 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유도계의 뿌리 깊은 파벌에 한계를 깨닫고 2001년 일본으로 귀화해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추성훈이 격투기 경기 때마다 입는 유도복의 양쪽 어깨에는 일장기와 태극기가 각각 달렸는데, 한일의 굴곡진 역사가 어우러진 듯하다. 추성훈은 지난해 3월 종합격투기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경기에서 일본의 아오키 신야(당시 39세)를 상대로 2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그동안 체급이 달라 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는데 14년째 도망자라고 도발하던 아오키를 그의 체급에 맞춰 13kg 감량하고도 거둔 승리다.
추성훈은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의 출현을 처음 제의받았을 때 전부 20·30대여서 일찍 떨어지면 멋이 없을 것 같아 거절했었으나, 40·50대 아저씨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려고 출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란 듯이 최후 20인까지 생존했다. 추성훈은 "지금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정찬성이 격투기 프로라면 추성훈은 인생의 프로 같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이들 같이 프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몸담은 우리 연구기관에는 프로 연구원이 몇 명이나 될까? 과연 나는 연구원들을 프로로 성장시키는 진정한 프로 트레이너가 될 수 있을까? 정신이 번쩍 든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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