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과거의 역사나 사건을 해석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이 어김없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진실보다는 현재의 선입견이나 주관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필연적 시대착오(inevitable anachronism)라고 부른다. 역사적 사건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다. 그래서 이를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법률에서도 이런 위험성 때문에 소위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정적을 없애거나 현재의 가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제멋대로 걸러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과거의 역사나 사건들은 당시의 시대상과 분리할 수 없다. 이는 신채호의 예를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대립, 투쟁으로 보고, 조선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력을 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육강식론이 그것인데, 강자가 되어서 약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의 논리는 곧바로 자가모순에 빠지게 된다. 강자인 일본이 약자인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나키즘을 수용한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적을 물리친 다음, 이후에는 어떤 지배 세력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강자에 의한 조선 지배의 정당성은 사라지게 된다.
신채호의 경우에서 보듯 자신이 하는 일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거나 보다 큰 정당성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 당연히 이를 선택하게 된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입당한 것 역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동일한 연합국이었거니와 그가 소련에 있으니 이와 함께하는 것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동일한 논리가 가능하다. 해방 직후 조선 백성의 70%가 사회주의를 원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지주들의 횡포에 피눈물을 흘린 농민들이 대다수였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런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백성들의 요구와 자신의 이념에 따라 남로당 활동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때는 지금처럼 진영논리라든가 북에 대한 적개심이 상대적으로 심화하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거기에 현재의 가치관을 그대로 대입시켜 이들을 매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의 가치를 무리하게 들이대는 일들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오랜 세월 학교나 공직에 봉직한 사람들에게는 경력에 따라 정부에서 훈포장을 수여한다. 그런데 과거 음주 운전 경력이 있으면 이 서훈에서 제외된다. 물론 음주 운전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지금의 가치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 행위가 이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았다.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과거의 일들에 대해 현재의 잣대가 개입됨으로써 이들은 한평생 이루어놓은 모든 공적에 대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입시 비리라고 비판받는 것도 그러하고, 부동산 투기 논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기준들은 과거의 그것에 대해 도덕성 여부를 크게 문제 삼게 된다.
현재의 기준을 가지고 과거를 판단하면 안 된다. 현재를 통해 과거의 것들을 재단하려고 들면, 필연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오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대 인물 중 가장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세종 대왕이다. 그는 한글을 발명하는 등의 업적을 통해 성군으로 칭송되지만,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형편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세종은 처첩 수십 명을 거느린 희대의 난봉꾼이기 때문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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