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이겠지만 9월부터는 나의 호칭도 바뀐다.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민기자, 작가, 강사라는 별칭을 들었는데 여기에 소설가가 추가되는 것은 나도 이제야 비로소 소설을 집필한 때문이다.
"최종 교정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회신을 받는 즉시 인쇄에 들어가겠습니다"라는 출판사의 안내문을 받은 건 어제 오후. 그 즉시 작업에 들어가 자정을 넘기도록 소설 원고 전체를 다시 살폈다. 그러자 다시금 눈에 밟히는 부분이 속속 드러났다.
역시 책은 고치면 고칠수록 명작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발간되는 소설로 인해 나는 이제 여섯 권의 저서를 내는 작가가 된다.
주변에서 "일반 사람은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나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라는 칭찬을 곧잘 듣는다. 그러한 덕담이 비록 영혼 없는 공치사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은 건 솔직히 속일 수 없다.
여하튼 9월의 셋째 주 수요일에 출판기념회까지 가질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내 마음은 흥분의 그네를 타고 있다. 지난 3월의 난생처음 첫 출판기념회에 이은 두 번째 대면 행사이기 때문이다.
생애 첫 저서인 <경비원 홍키호테>를 출간한 건 2015년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1605년에 출판한 소설이자 전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고전 중 하나인 <돈키호테>를 연상하며 제목에서 일부 차용한 이 작품은 내 인생의 모든 걸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키호테의 전매특허랄 수 있는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는 투철한 삶의 방정식을 따랐다고나 할까.
첫 출간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거듭하여 다섯 권의 저서를 연거푸 발간했으니, 작가로써 크게 농땡이를 부린 건 아니지 싶다. 어쨌든 첫 번째 출판기념회 때나 이번에도 역시나 출판기념회에 나의 가족은 아무도 출연하지 않는다.
원인은 베스트셀러 작가는커녕 그동안 출간하면서 늘기만 한 빚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아내는 "그깟 돈도 안 되는 책은 뭣 하러 기를 쓰고 내느냐?"면서 타박이다. 가난한 작가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물질적 빈곤에 넌더리가 난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가난의 장기화는 평범했던 주부까지 삶의 투사로 만든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럴 적마다 솔직히 나는 비애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부 사이라는 건 백년해로(百年偕老)가 되어야지 결코 시도지교(市道之交,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뜻으로, 단지 이익만을 위한 교제를 이르는 말)의 사이는 아니거늘.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이를 악물며 다짐한다. "입때껏 고생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오전육기(五顚六起)의 기적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며. 그 우뚝한 희망의 등대는 베스트셀러로의 등극이다.
사족이겠지만 간혹 소설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지적코자 한다. 범죄 혐의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피의자가 "검사님 소설 쓰고 계시는군요"라든가,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지금 소설을 쓰는 겁니까?"라며 반박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과연 단편소설이라도 하나 써 봤을까? 소설은 아무나 쓰나? 더욱이 장편소설은.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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