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학 또는 작가 정신이 중심인 문학모임은 드물다. 지연이나 학연, 이러저러한 인연의 끈으로 만난다. 해당 문학회도 마찬가지라 생각할 수 있으나, 분명한 지향점이 있어 고무적이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신도 대상의 목자였다면, 이제 문학으로 모든 이의 목자가 되는 것이다.
짧은 기간에 회원이 100여명 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문학회 취지와 목적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개방적이라는 것에도 호감이 간다. 같은 믿음으로 출발하였지만 외부인사 영입에 망설임이 없다. 귀감이 될 만한 지역의 문인 및 출판 전문가, 이론가도 불러들인다.
생각은 기억, 경험, 사고나 판단, 이해 등 표현하기 이전 정신이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추상적 개념이다. 사유(思維), 사고(思考)라고도 한다. 종교적으론 다르게 보겠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한다. 선사시대 출현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현생인류와 동류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원시 인류를 이겨내고 현존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생각하는 동물이란 말도 된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시시각각 변한다.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 ~ 1941 프랑스 철학자)은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 명명한다. 도구 사용하는 것이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 ~ 1945, 네덜란드 문화사학자)는 놀이의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 주장한다.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힘주어 말한다. <길위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 ~ 1983, 미국 사회철학자)는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나 관습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개 놀이라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며 도구도 실용성과 관계없는 놀이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장난감, 의복, 장신구, 생활도구, 기계, 무기, 예술 등 모두 여가에서 얻어졌다고 말한다. "놀이는 분명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일이었다."며 예술가로서의 인간이 노동자로서의 인간보다 한참 앞선다한다. "생필품에만 매달렸다면 인간은 지금도 동물의 왕국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단순히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 없는 대상에 에너지를 쏟고 심지어 인생을 걸 때 인간 고유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창의적인 역량을 한껏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화는 자연 환경이 풍부하고 여가가 보장되며 뭔가 만지작거리고 노는 활동에 재미를 느낄 때 실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인간의 승격은 황량한 전쟁터보다는 에덴동산 같은 놀이터에서 이루어졌다."
놀이가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놀이가 인류를 선도해가고 인간의 품격을 높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류학자나 만속학자 중엔 문화예술의 출발이 제천의식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거기에서 모든 장르의 예술이 분리되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런 제천의식 이전에 놀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놀이를 통하여 심신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사고도, 과학도, 사회도 발전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할 수 있는 일도 놀이다. 다만, 놀이 인데 격식 있게 노는 것이다. 격식이 많아지면 고품격이 된다. 곧 고품격 놀이가 문화예술이다.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말을 오늘도 되새김한다.
고품격 놀이로 생활하면 고품격 인생이 됨은 당연하다. 그런 사람이 모여 놀면 고품격 문화가 된다. 고품격 문화가 사회의 본류가 되길 기대해본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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