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인 사회과학부 기자 |
예삭 삭감 과정에 충분한 논의나 검증은 없었다. 상반기 내내 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기관과 논의해 만들어 놓은 R&D 예산안이 대통령 한 마디에 흐트러졌다. 수차례 논의 끝에 편성한 예산안은 법정 기한을 넘겨가며 '재조정'을 요구받고 결국 난도질당했다. '재분배'라던 신임 관료의 말은 거짓이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기 정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부처가 맞는지 의문이다. 그동안 자신들과 함께 일한 과기계를 한순간 카르텔로 전락시킨 것은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연구현장 곳곳에서 불만과 앓는 소리가 나온다. 수년간 연구·개발한 결과물을 본격 실증하는 단계를 앞둔 한 연구자는 연구비 80%가 깎였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자는 과제평가 과정서 예산을 20% 줄이지 않으면 그대로 과제를 종료하겠다는 말을 듣고 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투입된 노력과 세금은 무엇으로 보상할지, 곤두박질한 과기인들의 사기는 누가 어떻게 올려 줄 수 있을까. R&D 예산 방지를 막겠다며 상대평가를 도입해 하위 20% 과제는 강제 퇴출하겠다는 이 정부에서 과연 누가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지도 암담하다.
전 국민이 주목했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와 달 탐사선 '다누리' 개발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한 종사자가 퇴직을 앞두고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화제였다. 동경과 애정을 갖고 대기업 대신 선택한 항우연을 왜 떠나기로 결심했는지의 과정이 적혀 있다. 열악한 처우는 물론 과학기술 그 자체가 아닌 정치적 논리가 낀 우주항공청 이슈까지 여러 악조건이 누적된 결과다. 연구현장의 실상은 이럴진대 재원을 조이고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찍는 정부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이해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자율적인 연구환경 확립'이라는 방향을 밝혔다. "지정된 장기 연구 사업비에 대해선 연구 기간 내 꾸준한 예산 지원이 이뤄지게 하고 계획 초기부터 목표와 종료 시점, 지원 규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험적 연구와 실험의 실패를 용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 그 말들이 현재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아 유감이다.
임효인 사회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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