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부국장 |
레드 콤플렉스, 일본 강제병탄기를 끝낸 1945년 8·15 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을 좌우로 분열시킨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미군정을 시작으로 이승만 초대 정부에 이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까지 대한민국 사회 영역 곳곳에 침투해 국민을 좌우로 양분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 독재에 맞선 국민의 저항을 모두 공산당 활동으로 조작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까지도 빨갱이의 공작으로 악용했지만, 역사는 국민의 정당한 저항으로 기록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주로 보수 정당·정치인이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전략으로 이용해왔다. 그랬던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졌다고 평가받은 건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과정 때였다.
당내 경선에서 보수 성향의 경쟁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좌익활동을 했다며 레드 콤플렉스, 즉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공격을 받은 노무현 후보는 “장인은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며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연설로 선거 판도를 바꿨고, 국민은 그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후 거짓말처럼 레드 콤플렉스는 여러 선거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라졌던 레드 콤플렉스가 2023년 대한민국 정치의 정중앙에 재등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에서 시작해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까지 당도했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와 관련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4·19 혁명 기념사에서 허위 선동과 협박, 폭력, 날조 등의 단어를 쓰며 민주주의와 인권운동가 일부를 독재와 전체주의 편으로 치부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학계에선 ‘경축사가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이 한창인 8월 28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들과의 자리에서도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육군사관학교가 애초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등 5명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애초 계획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국방부와 육사는 공산주의를 강조하며 홍범도 장군만 걸고 넘어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머슴에서부터 건설현장·종이공장·광산노동자, 사냥꾼 등 밑바닥 출신이라고 깎아내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명분과 정당성, 역사적 근거조차 미약한 홍범도 장군을 논란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국방부와 육사의 변명을 보면 군인다워 보이지 않는다.
논란과 책임론이 커지자 대통령실조차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범도 장군은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 참석 당시 소련에 제출한 조사서에 직업은 ‘의병’,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고 직접 적었다.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과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직함 앞에 공산주의와 운운하는 건 후예로서 예의가 아니다.
국방부와 육사는 유한한 권력에 흔들리지 말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넘보는 모든 세력에 맞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군’으로서의 명예를 다시 생각할 때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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