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벌써 시선은 올해의 끝자락을 향한다. 해마다 연초에 세웠던 부푼 꿈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숫자로 계량화하여 비교·경쟁하는 데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은둔·고립이 늘어나고, 불만·분노가 팽배한 사회로 되었다. 새삼 삶이라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에서 웬만큼 자유로운 나이에 자기만의 길을 찾아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쯤 커피숍에 어김없이 3인이 나타난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끊어졌던 노자 공부 모임이다. 올 초부터 다시 이어가고 있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겉모습을 보면서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힘 앞에 새삼 무상을 느낀다. 한여름이 지나가듯 인생의 치열한 때를 넘기고 도달한 또래들이다.
각자 노자를 공부한 지도 햇수로 치면 제법 된다. 한 친구는 엑셀로 역대 노자의 주석을 정리하고 노자 색인과 자전을 만들었다. 다른 벗은 노자강의를 듣고 열람용 책을 묶었다. 또 다른 이는 노자 공부를 위한 마중물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다.
공부 방법은 한가하고 느긋하다. 노자 81장 중 매주 한 장씩 원문과 해석을 읽고 발제를 하면 의문점이나 관점을 말함으로써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알아간다. 자기만의 풀이에 들어가도록 서로 길을 안내한다고나 할까. 치열한 논쟁은 없다. 제각각인 우리의 노자 접근법은 과녁 없는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초등학생처럼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운이 좋으면 한 주 동안 공부 거리가 될 의문부호 하나 챙겨 간다.
우리에게 '고도를 기다리는' 설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생의 쨍한 순간에 매듭짓지 못하고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인생의 숙제를 더듬는 정도다. 치열함 뒤에 맛보는 휴식 같은 시간이다. 노자의 글을 읽어 단번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알기에는 역사의 시층(時層)과 사유의 퇴적층이 너무 깊다. 노자는 호흡을 길게 하며 읽어야 한다. 풀어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양생·수련·처세·도덕·철학·정치 같은 여러 색깔로 나타난다.
'존재와 시간'으로 철학계에 큰 자취를 남긴 하이데거도 중국인 제자와 함께 노자를 일부 번역하였고, 제15장에 나오는 한 구절을 자기 서재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지금에 이르도록 노자를 공부해보니 노자를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민 겸손 유연함 자유로움, 부나 권력처럼 개념화된 것에 빠지지 않은 지혜, 무엇보다 물처럼 다투지 않고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덕에 대해 새로이 눈뜨게 된다.
인생의 여름을 지났는데 무슨 결핍과 펼치지 못한 욕망의 날개가 있을 것인가. 젊은 날 달구던 열정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갔음을 안다. 헛헛한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소유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무위의 욕망이 아닐는지.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떠날 때 스스로 한계를 긋지 않고 알 수 없는 가능성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살다간 보람이 있을 테다.
인간은 생김새, 부모, 나라를 선택함이 없이 그냥 던져진 존재이기에 근본적으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산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길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면 어제의 나, 오늘의 나는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내일의 새로운 나가 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늦은 나이란 없다고 한다. 스스로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행복을 느끼면 진정 괜찮은 삶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가을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어렴풋이 들린다. 장마와 무더위에 지친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기 좋은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다. 계절의 순환을 좀 더 깊고 그윽한 시선으로 성찰하며 다가올 결실의 시간표를 점검해 보면 어떨까.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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