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유선 책임연구위원 |
전례 없는 돌봄 부족을 경험하면서 돌봄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나온 출산율 증가이기에 놀랍고, 출산율을 걱정하면서 정작 아무도 '돌봄'을 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온 증가기에 더욱 놀랍다.
학교와 돌봄 시설이 문을 닫을 때, 돌봄노동은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에게 휘몰아쳤다. 이때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는 공적 돌봄 시스템이 가족관계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도 하던 처음 며칠은 즐거웠단다. 그러나 그 후로는 밤마다 운동장을 돌며 울었다는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온라인 등교로 집에 있는 자녀의 수업 참여 및 집중 여부를 확인하고, 진도를 관리하고 숙제를 지도했다. 집에 있는 자녀와 재택근무하는 남편 점심을 챙기면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투여되는 그녀들의 시간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육체적 힘듦보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했다. 엄마들은 배우자 및 자녀와의 관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인한 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했다.
무엇보다도 양육자를 힘들게 한 건,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온라인 수업은 잘 듣고 있는 건지,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는지, 온종일 자녀와 같이 있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아이들만 남기고 출근해야 하는 양육자의 마음은 더 불안했을 것이다.
돌봄이 온전히 개인, 가족에게 맡겨진 시기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돌봄'이 중요한 기술이자, 능력, 자원이라는 걸 깨달았고, 돌봄 정책의 확대에 동의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이 우선 논의되면서, 돌봄을 받는 아이와 돌봄을 제공하는 양육자나 노동자가 어떤 공간과 환경에서, 어떤 관계와 조건 속에서 돌봄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돌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어려운 직종에는 왜 특정 성별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지, 돌봄노동의 가치는 왜 낮게 책정되어 있는지 등의 논의는 진척되고 있지 않다.
개인의 능력과 경쟁력이 척도가 되는 직장에서, 성과와 업적을 쌓기 위해 오래 일해야 하는 일터에서 돌봄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들이 설 자리는 없다.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녀를 낳아 키운다는 건, 더 많은 노동으로 돌봄노동을 제공할 노동자를 구매하거나, 부부 가운데 한 명이 일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인정받는 노동자이면서 좋은 양육자가 되기 어려운 사회다.
사회에 참여하는 여성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돌봄 때문에 경력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줄지 않는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시간 등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고 덕분에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제도를 여전히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의 이들이 많고, 제도를 이용하면서 맘이 편치 않은 이들도 있다.
좋은 '돌봄'은 몸과 마음, 시간, 그리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좋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삶의 기술이자 공동체의 인프라이며, 지역사회의 분위기다. '돌봄'이 기본이 되는 사회의 시민은 돌봄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기꺼이 돌보는 사람일 거다. '좋은' 돌봄 능력과 기술을 가진 시민이 돌봄사회의 주요 자원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으나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것, 그런데 여성 고유의 특성으로 돌봄이 인식되는 사회에서, 돌볼 가족이 없는 혹은 돌봄노동에서 제외된 노동자가 디폴트값인 노동 사회에서, 출산을 결정한다는 것은 경력을 포기하면서, 기한 없고, 퇴근 없고, 급여 없는 돌봄노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돌봄이 장려되지도 선호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출산은 격려되기 어렵다.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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