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나는 자주 절망에 빠졌다. 길이 없었다. 캄캄한 밤,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뿐이었다.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둥대며 어딘가 있을 나의 길을 찾았다.
마치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가시넝쿨을 걷어내듯 그렇게 나를 뒤적이며 속내를 휘젓고 있는데, 불현듯 길이 보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고, 외로웠을 때였다. 그런데 그 길이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인이 읽고 있던 책을 무심코 들여다보게 되었다. 제목은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인간은 아프면서 성장한다고 하는데 얼마큼 더 아파야 성숙한 걸까. 아니,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책에서 어렴풋이나마 구할 수 있었다. 길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디에나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의 애송 시, 「아픔은 배경을 물들인다」 "아프지마요 / 나 거기 있어요"는 어디선가 읽은 단 두 행이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을 밝게 비춰준다. 밤새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절망에 빠지다가도 그 시를 읽고 있으면 먼동이 터오듯 힘이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고 주용일 시인 시를 좋아해서 그의 시집 6권 정도 갖고 있으면서 시가 그리울 때, 혹은 우울할 때 펼쳐보곤 한다.
가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
는 내 마음속에서 뜨고 지던 별들이며 노래들을 생각한
다. 사랑, 평등, 신, 자유, 고귀함 이런 단어들이 내 가슴
에서 떴다 사위어가는 동안 내 머리는 벗겨지고 나는 티
끌처럼 작아졌다. 새들의 지저귐처럼 내 마음에서 부드
럽고 따뜻한 노래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동안 내 영혼은
조금씩 은하수 저쪽으로 흘러갔다.
-故 주용일 시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되었다」중에서
나는 여행 시를 많이 쓰는 편이다. 오래전 주말에 국내 여행을 많이 했는데, 지인 김 선생과 같이 다녔다. 그녀는 운전하는 걸 좋아했고 나는 운전을 못 해서 우리는 곧잘 천생 동반자라고 말했었다. 지금은 서로 바빠져서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녀가 생각날 때면 그 당시 쓴 시를 읽으면서 위안을 삼았다. 어느 때는 온종일 운전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시를 한 편 써서 그녀에게 바치곤 했다 그 중 「변산반도-모항마을에서」 시는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는다.
나의 일상은 곧잘 한 편의 시로 변신한다. 무엇이든 마음에 내키면 시로 썼다. 친구들과의 수다, 카페에서 차 마실 때, 시장 나들이, 동네 한 바퀴 걷기 등… 일행들과 저녁 식사 후, 근처 생맥주 집에서 가볍게 한잔하자고 간 곳에서 삶에 대해서 격론하던 시간도 시 한 편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맥주 500cc 한 잔에
붉게 타는 입술을 들썩이며 말할 때마다
그는 발정 난 수컷 같았다.
흠, 헛기침하며
'사랑의 미학이란' 운을 뗄 때
아니, 곁눈질로 옆 좌석의 미니스커트 아가씨
종아리를 흘끔 흘끔 바라볼 때
그는 더욱 수컷의 냄새를 풍겼다.
-진정한 사랑이란,
-너, 진정한 사랑 뜻은 알고 있는 거냐!
뭐? 다정하게 이야기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웃기지 마라.
-사랑이란 육체를 베이스로 대화를 나누는 거지.
이 바보야! 넌 성을 너무 몰라.
그는 500cc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뇌까린다.
-한 여자가 한 남자하고만 평생 산다는 것도
문제가 좀 있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남자도 피곤하고.
-네? 그러면 이 남자 저 남자 바꿔서 사나요?
하, 너는 참!
-민순혜 시「사랑 혹은 섹스」
나는 이제 메모가 아닌, 시인으로서 시를 쓰게 되어 뿌듯하다. 지금 막 내 방 책꽂이 높은 곳에 올려놓았던 버려진 시집들도 아래 칸으로 내려놓았다. 진통을 겪으며 건진 한 편의 시를 보게 될 때 나는 행복할 것이다.
행복으로의 길을 〈세종마루시낭독회〉와 함께 하고 싶다. 나에게 그 길을 내준《세종시마루》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오늘이 있기까지 저에게 시를 지도해 주신 손종호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저의 멘토이며 시 공부에 도움을 주신 박 시인님, 그리고 2022년 후반기 대전문학관 시창작 심화반에서 강의해 준 성은주 교수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더불어 나에게 시의 길을 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민순해/수필가
민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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