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대한민국 정부. 세입자 사장은 K리그다. 이미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대로 파행을 거듭하며 비난받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피날레 행사인 'K팝 콘서트' 장소를 새만금 잼버리 행사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변경했다. K리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K리그를 주관하는 프로연맹이나 구단 측 동의는 없었다. 예정됐던 FA컵 경기는 돌연 연기됐고 전주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전북 현대는 대체 구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이튿날 콘서트 장소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변경했다. 남쪽에서 북상 중인 태풍이 그 이유였다. 전북 현대는 하루 사이 뒤통수를 두 번이나 맞은 것이다.
건물주의 횡포는 FC서울로 옮겨졌다. 무대 설치로 2년간 10억을 투자해 애지중지 키워온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가 단 하루 만에 초토화됐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혼합형 하이브리드 잔디라 축구계의 관심이 많았다. 손홍민을 비롯해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친선 경기서 엄치척을 세웠던 잔디의 상당 부분을 걷어냈다. 서둘러 복구 작업에 들어갔지만 새로 심은 잔디가 뿌리를 내리려면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리그 종료까지는 잔디 훼손이 불가피하다. 리그 일정에 잔디까지 피해를 본 전북 현대와 FC서울은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국내 K리그 구장 대부분이 정부 소유의 시설관리공단에 임대하여 쓰고 있는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건물주의 요구가 부당해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
무너진 국격을 회복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잼버리 수습하느라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혼란을 겪은 구단과 K리그 팬들에게 대한 사과는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잔디를 복원해 주겠다고 문화체육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는 또 한 번의 한숨을 자아낸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서울 FC'와 서울시설공단 측과 협력해 이른 시일 내 경기장을 원상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현재 상암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구단의 공식 명칭은 'FC 서울'이다. K리그에 '서울 FC'라는 구단은 없다. 대한민국 문화체육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 서울 연고 축구팀의 공칭 명칭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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