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
현행 자치경찰제가 가진 치명적 결함은 한 지붕 세 가족이지만 한 가족이 세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어정쩡한 동거 관계라는 점이다. 광역자치단체마다 자치경찰위원회를 꾸려 자치경찰제를 해 왔지만, 정부 출범 후 70여 년 동안 해 왔던 국가중심의 경찰제도 운영이라는 현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법은 국가경찰사무와 자치경찰사무를 엄연히 나누고 있다. 하지만 자치경찰사무를 전담하는 지방경찰공무원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없다. 국가경찰공무원이 자치경찰사무까지 모두 수행하기 때문이다.
자치경찰의 중심이 되어야 할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도 국가경찰 소속의 112치안종합상황실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신고에 사후대응하기도 바쁘다.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17개 경무관급 자치경찰부장을 신설했지만, 전문성 발휘는커녕 6개월을 멀다하고 바뀌기 일쑤다.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에 파견경찰관도 있지만 경찰관서에서 근무할 때의 생산성과는 엄연히 비교된다. 지역경찰의 임무 원상복구와 자치경찰부장 인사 사전 협의, 파견경찰관을 대체하는 전현직 경찰공무원 경력의 지방공무원 채용이 논의되는 이유다.
자치경찰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경찰력 운영은 사실상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올해부터 시도의 예산지원을 받는 구조를 본격 활용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2023년부터 시도경찰청의 생활안전·여성청소년·교통 기능 예산이 지방이양 사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를 시도비로 편성하도록 하고 있어서 지방재정이라는 금고도 따로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2024년 자치경찰사무에 필요한 예산안 편성에는 시도경찰청 요구성 예산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시도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돈만 대는 지방정부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구조다.
자치경찰제를 향한 논의는 제도 도입 이전부터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 정부에서는 자치분권 사무가 대통령직속 균형발전위원회로 이전·통합되면서도 자치경찰 실질화 논의는 계속되었다. 현재는 시범실시를 통한 자치경찰 이원화 방안 등을 다루기 위해 국무총리소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여기에 최근 지방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양대 국정과제를 통합하는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했다. 명실상부한 자치경찰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조직이다.
그런데 지방시대위원회 위촉위원 구성에서부터 '지방시대'에 걸맞지 않게 중앙정치의 입김이 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모든 국정이 내년 총선에 발목 잡혀서 자치경찰제 실질화 논의 역시 물 건너갈 것이라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재도약과 국격을 높이기 위한 선진국형 경찰제도 설계에서조차 정치 논리와 정치적 셈법이 우위를 점하게 되면, 염불보다는 젯밥에 관심을 둔 비전문적 구성으로 인해 이렇다 할 혁신적 성과를 도출해 내지 못한 채 국민 행복의 발목잡기나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대로라면 자치경찰제는 홀로서기 어렵다. 법과 제도상 실질적 권한이 현저히 부족하고 그마저도 국가경찰의 협력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홀로 설 수 없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자치경찰"이라는 이름의 경찰제도는 시민들의 인식 속에서 온전한 경찰제도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정부는 시범실시 방안을 담은 구체적인 특별자치시·도법의 법안 준비와 심의 일정 등을 감안하여 로드맵에 따라 내년도 이원화 자치경찰제 시범실시를 위한 정부방침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자치경찰제 홀로서기를 위한 실질화 일정 진행 약속에 진심을 보여주기를 촉구한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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