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23 ‘홍주의병’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 위한 전문가 초청 언론좌담회

[기획] 2023 ‘홍주의병’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 위한 전문가 초청 언론좌담회

충남의병기념관홍성군민간유치추진위원회 주관

  • 승인 2023-08-13 16:35
  • 신문게재 2023-08-14 8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홍주의병'의 항일무장투쟁은 국가누란의 위기에 국민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다시 회복하고자 했던 불굴의 민족운동이었다. 또한, 1906년 이후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 일대 한국독립운동의 시발이었고 민족적 각성을 촉구한 민족자강운동이었다. 2023 광복 제78주년을 기념해 최근 충남도의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에 즈음해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본 좌담회는 이연우 충남의병기념관홍성군민간유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사회로 이종찬 광복회장,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정은 국가보훈부 연구원, 김상기 충남대학교 명예교수가 참여했다. <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가장 치열했던 홍주의병 항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종찬 광복회장
이종찬 광복회장
▲이종찬 광복회장 "다시는 망국의 고통 당하지 않도록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첫째, 우리나라는 집권자가 나라를 지키지 못할 때 국민이 나선 나라다. 대한제국의 국권이 '경술국치' 조약 한 장으로 일본에 넘어가면서 왕과 집권층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지 못하자 국민이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전국 최대 규모의 의병항쟁이 홍주의병 항쟁이다.

둘째, 1896년 제1차 홍주의병과 단결심을 배워야 한다. 1896년 11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홍성의 김복한, 이설, 홍주향교 전교 안병찬 등의 선비들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청양의 선비들도 합세해 홍주성을 점령했다. 의병장 김복한은 홍주부 관할 22개 군과 홍주군 내 27개 면에 통문을 띄워 의병을 초모했다. 홍주 선비들은 홍주성을 점령할 만큼 한마음 한뜻으로 잘 단결되었다.



셋째, 1906년 제2차 홍주의병과 충남 선비들의 불요불굴 정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망국이 눈앞에 이르자 홍주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 선비들이 다시 일어섰다. 홍주의 안병찬, 박창로, 이세영 등은 1906년 3월 11일 정산의 전 참판 민종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부여의 지치에서 출발해 남포전투에서 승리하고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했다. 결국, 일본 정규군의 막강한 화력을 동원한 총공세에 홍주의병진이 무너지고 말았지만 이들은 충남의 소난지도, 경기 남부, 전라도 등지로 빠져나가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넷째, 국민의 의무를 다하자. 한 번 잃은 나라를 다시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세월과 희생이 따랐는가. 홍주의병이 일어난 지 거의 40년이 지나서야 해방을 맞았다. 한 세대 이상이 일제하에 고통스러운 압제와 수탈을 당했다.

다섯째,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국왕과 집권층이 끝까지 병합조약을 거부했으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병합조약 제1조는 왕과 집권 세력들의 특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독립을 희생하는 대신 그들의 특권을 보장받았다. 3·1운동과 함께 의병운동은 가장 많은 참여와 희생을 치른 독립운동이다. 다시는 망국의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사회지도층들은 솔선수범의 정신을 다져야 할 것이다.

-홍주의병 사건이 한국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이정은 국가보훈부 연구원
이정은 국가보훈부 연구원
▲이정은 국가보훈부 연구원 "홍주의병 사건은 한국독립운동의 모태"=홍주의병 항쟁은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기 위해 충남인들이 일본 정규군과 맞선 처절한 싸움이었다. 홍주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피의 희생이 따랐다.

첫째, 살아남은 홍주의병은 공주, 논산, 연기, 대전 등 계룡산 일대를 근거로 항일 의병투쟁을 지속했다. 서산 당진 등 서해안 일대에서는 섬을 근거로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둘째, 홍주의병 지휘부에 참가했던 보령 선비 유준근은 홍주성이 함락될 때 일본군에게 잡혀 무기형을 받아 대마도로 유배된 후 스승 최익현을 그곳에서 만났다. 대마도 유배에서 풀려난 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홍주의병 동지인 보령 남포 선비 백관형 등과 상경해 기독교 등 각계 인사 12명으로 제2의 민족대표를 구성하고, 3월 12일 조선총독부에 독립을 요구하며 보신각 네거리에서 '12인 등의 장서'를 발표해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다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 유준근, 백관영은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파리 장서'에도 유림대표 137인 중 1인으로 각각 서명했다.

셋째, 홍주의병에 참여한 김재정의 장남 김한종은 1915년 당시 최대 비밀독립운동 조직인 광복회의 충남 책임자가 됐다. 충남의 광복회는 예산과 연기에 곡물상을 거점으로 삼아 만주 독립군에 자금과 인원을 공급했으며, 1918년 1월 아산 도고의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해 일제를 놀라게 했다. 넷째, 충남의 의기와 홍주성의 피의 항쟁 정신이 1919년 충남 전역에서 3·1운동으로 계승됐다. 3월 2일 논산과 부여에서 곧바로 호응했으며, 이후 3월 3일은 대전 인동과 예산에서, 그 후 온양, 목천 등지 보통학교에서 호응하더니, 3월 말 4월 초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 공주의 장기와 정안, 당진의 대호지와 천의 등 충남 전역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다섯째, 청양의 한훈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1906년 홍주의병 소모장(召募將)을 맡아 각지에서 의병을 모아 1000여 명의 대부대로 홍주성을 점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홍주성이 함락되자 만주로 피신했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와 임병찬의 독립의군부, 1913년에는 비밀 항일결사 광복회 조직에 참여했다. 1918년 1월 친일 도고면장 처단 사건으로 광복회의 실체가 탄로 나자 다시 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8월 미국 국회의원단이 중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오자 그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해 권총·폭탄 등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한 후 김상옥 의사의 암살단과 손잡고 일본 총독 등 고관 처단과 식민통치기관을 파괴하는 활동을 벌였다. 여섯째, 홍주의병 정신은 1930년대 일제의 침략전쟁이 만주와 중국 관내로 확대될 때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로 대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홍주의병은 이후의 의병항쟁 확산, 1910년대 광복회 비밀결사 독립운동, 충남 전역의 3·1운동, 1920년대 김상옥·한훈의 암살단과 1930년대 윤봉길 의거 등 독립운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주며 광복 때까지 이어져 충남을 독립정신의 본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홍주의병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도 정리해 주시지요.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중심은 홍주의병이었다"=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이를 진압할 수 없었던 민씨 세도 정권은 청나라에 군대 파병을 요청했다. 청군이 아산만으로 상륙하자 한국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자국의 공사관과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를 대며 7000명의 일본군을 제물포로 상륙시켰다. 인천에서 서울로 진입한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는 한편 아산만의 풍도 앞바다에서 청의 수송 선단을 공격하면서 우리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육군은 남하해 아산, 성환에서 청군을 격파하고 도망하는 청군을 평양에서 격파하고 랴오뚱 반도까지 추격해 승리했다.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게 됐다"며 감격했다. 승리한 일본은 청일 간에 강화회담인 시모노세키(馬關) 조약에서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했다"고 조약에 명시했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이래 조선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며 조선의 문호 개방을 반대했다. 한국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속국으로 묶어두려 한 것이다. 청일전쟁의 패배로 조선은 청국의 부당한 외교적 압박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일본의 야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랴오뚱 반도와 타이완, 펑후제도 등을 할양받고 배상금 2억 냥을 받아낸 후 곧바로 한국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 확립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의 삼국간섭에 부딪혀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자 이 상황을 지켜본 민 씨 정권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친러정책을 취했다. 초조해진 일본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방해하는 왕비 민 씨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1895년 10월 8일 이른 새벽, 경복궁 건청궁 내 옥호루로 난입한 대륙 낭인들은 조선 왕비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소식이 조야에 알려지자 의분에 찬 유생들은 민족의 자존(自尊)과 독립을 지키고자 의병 정신을 발현해 그해 12월 의병을 모집하고 홍주에 집결하였다. 반개화 반침략의 기치를 높이 올린 척사(斥邪) 유생들이 구국의 실천적 봉기를 시작한 것이다.

1896년 봉기한 전기 홍주의병은 성리학의 정통과 질서를 보위한다는 '위정(衛正)'보다 한국의 독립과 자존을 위협하는 사악한 오랑캐 무리를 물리쳐야 한다는 '척사(斥邪)' 의병항쟁이라 할 수 있다. 을사5조약으로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자 1906년 홍주의병은 다시 일어났다. 독립전쟁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일제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렇게 홍주의병은 문명개화와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 준다고 외친 일제의 침략 의도를 간파하고 반개화 반침략론으로 무장해 일제의 무력에 맞서 용감히 항쟁했다. 이 때문에 홍주의병 운동은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시작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홍성은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 의병 투쟁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를 현창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김상기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기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기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의병 정신의 고양은 민족 정체성의 확보다"=홍주의병은 홍주지역의 유학자와 평민들이 홍주성을 거점으로 일제와 항전한 의병을 말한다. 홍주의병은 1896년과 1906년, 그리고 1907년 이후 1910년까지 지속적으로 항일전을 수행한 점에서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홍주의병은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의병을 봉기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거나 그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경술국치 후에 전개되는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그러나 홍주의병은 이와 같은 역사적 평가에 비해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못한다. 이는 학술적인 연구 사업은 상당한 정도 진척된 반면에 이를 일반에 알리는 홍보나 현창사업이 소홀했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홍성군에서는 홍주의병 재현 행사를 해왔고, 홍주의사총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도록 노력하는 등 그동안 많은 사업을 진행해 왔다. 2020년에는 행자부에서 지원하는 의병의 날 행사도 주최했으며, 이를 기념해 '한말 홍주의병'이란 연구물도 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홍성군이 홍주의병 선양을 위한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홍성군 이외의 지역에서는 홍주의병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홍주의병의 역사 알리기 사업이다. 홍주의병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과 일반에 홍주의병사를 알리는 사업이다. 그 방법으로는 홍주의병에 대한 소책자 제작 및 교육 사업이 있다. 특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학교 당국이나 교육청 등과 협의해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는 홍주의병 관련 사적지 조사 및 설명판 세우기다. 관련 사적지가 홍성군 이외에도 청양, 예산, 보령, 부여 등지에 산재한다. 이를 문헌에 근거하여 조사하고 그 내용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셋째는 '홍주의병사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마련해 해당 지역의 관광지와 연계하여 실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넷째는 홍주의병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알리고, 또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 이미, 제천시를 비롯하여 의성, 보성, 청송, 춘천 등지에 의병기념관이 건립되어 의병 정신의 선양은 물론 지역인의 정체성 확립과 자긍심 고양에 힘쓰고 있다. 홍주의병을 현창하기 위한 의병기념관 건립을 기대한다.

-충남의병기념관 홍성군 유치의 당위성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연우
이연우 충남의병기념관홍성군민간유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연우 충남의병기념관홍성군민간유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홍주의병 정신이 바로, 충남 100년의 시대정신이다"=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서세동점의 시대 국가누란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섰던 홍주의병을 기억하는 것은 민족정체성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청국이 조선에 파병하자 일제는 이를 빌미로 일본군을 파병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고 왕비 민 씨의 러시아군 파병 요청으로 러일전쟁과 민비 시해 사건이 야기됐다. 이러한 때 초야(草野)에서 유생과 유림들이 주축이 되고 이름 없는 백성들이 가세해 일본 정규군과 맞서 싸웠던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무장투쟁이었다. 이러한 홍주의병이 한국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과 당위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한국 독립운동의 요람은 홍성(홍주)일 수밖에 없다. 또, 홍주의병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중심 역시, 홍성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홍성(홍주)에 새로운 충남 100년의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하는 중심지로 삼고 그 뜻과 정신을 기리는 데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유관기관 및 관련 단체 간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의 최적지로 홍성(홍주)이 손꼽히고 있는데 이를 지역 간 이해관계나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한다면 세상의 비난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당위성과 필연성을 생각한다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그 치열했던 의병항쟁에서 충남의 선비정신과 의리정신을 구현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지식경쟁 시대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해내야 함은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다. 장렬히 산화한 홍주성 순국열사들의 뜻을 기리고자 한다면 그분들의 숭고한 뜻과 정신도 이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은 그분들의 혼백이 머물러 계신 이곳 홍성(홍주)에 유치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 역시,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면 전국적인 기관, 단체 간 전문가 그룹을 구성 '충남의병기념관건립선정위원회'에서 정하면 되는 일이다. 거듭, 공정하고 투명하게 최적지를 선택해야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충남도백의 뜻이고….

정리=현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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