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담묵의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물살이 수채화 느낌이다. 포말일까? 이끼일까? 물결 따라 적절히 점이 떠돌며 동세를 더한다. 수초의 농담으로 원근감이 살아난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것일까, 부감시(俯瞰視)로 그렸다.
얼마나 깊이 관찰하였으면 사물의 특징만 콕콕 짚었을까? 얼마나 많이 반복해 그렸으면 최소한의 감필로 빼어난 묘사가 되었을까? 경이롭기만 하다.
공저 <꽃과 동물로 본 세상>에 게재된 최경현 문화재감정위원의 글 '사대부화가 홍세섭의 영모화'에 의하면, 지금까지 발견된 홍세섭의 작품은 일주학술문화재단 소장본(원래 10폭 병풍으로 보이나 4폭이 반씩 나뉘어져 있어 14점)을 제외하고 총 27점이다. 각각 10폭, 8폭, 4폭 등으로 구성되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원이나 의미, 구성이 어떻게 되었었는지 불분명했으나, 1884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이 촬영한 사진이 발견됨으로서 명료해졌다. 사진의 주인공은 영의정을 지낸 홍순목洪淳穆(1816~1884)으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인물이다. 주인공 뒤로 10폭 병풍이 펼쳐져 있어, 그 순서를 알게 되었다.
본 <유압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8폭 병풍 중 3폭이다. 8폭 병풍은 매화가지에 까치가 앉아있는 <매작도>, 덤불해오라기가 물가에서 노는 <주로도>, 청둥오리가 유영하는 <유압도>, 부들 앞에 쇠백로가 서있는 <백로도>, 바위섬 앞에 가마우지가 노니는 <해로도>, 기러기가 내려앉는 <낙안도>,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노안도>, 눈 덮인 대나무 가지에 새가 앉아 쉬는 <숙조도>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하는 새는 각각 한 쌍으로 되어있다.
같은 소재가 반복하여 등장한다. 때문에 조형성이나 완성도에 따라 그린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이상적 조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걸작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압도>가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오리는 암수사이가 좋아 부부금슬의 상징이다.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메신저, 복을 부르는 상서로운 길조로 인식되었다. 물을 부르는 신성한 동물이 되기도 하고, 으뜸(甲)을 상징하기도 한다. 8폭이 저마다 계절에 안배되고 각기 다른 의미와 부부해로를 염원한다.
19세기 영모화는 길상적 의미와 화려한 채색의 장식성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한다. 홍세섭은 시대조류에 따라 통속성이 강한 영모화를 전문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중에 유통하였다.
당시는 척신과 권신들로 왕권이 쇠약해지고 민란이 빈번하여 국내 사정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물밀 듯 밀려오는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야욕에 나라가 마구 흔들리는 난세였다. 무엇이고 위안이 될 대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오리 암수 모두에 역동적인 발 모습이 보인다. 오리는 수륙 양용으로 쓰이는 물갈퀴를 가지고 있다. 유유자적 그냥 떠 있을 때도 물속의 다리는 부산하게 흔든다. 누가 보든 안보든 역할에 충실하며 부단히 일하고 있다.
불기암실(不欺暗室)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건설적인 일은 그만두고, 숨어서도 아니요, 남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요즈음 정계 세태다. 나아가 자신이 벌인 과오를 덮으려, 얕은 수로 속이려 든다. 우리속담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가 딱 이다. 그나마 어색하여 거짓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자신만 모른다. 모른 체 한다고 세상이 모르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궁지에 몰린 꿩이 눈 속에 머리만 묻는 격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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