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현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국가, 법의 통치(rule of law), 민주적인 책무성(accountability)의 세 가지 자유민주주의 제도적 원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국가는 정해진 영토 안에서 유일하게 합법적 강제력을 행사하며 국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정치공동체에 필요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의 정당성은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정부 역량에 의존한다. 무엇보다 국가의 존재와 역량은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법의 통치란 정치공동체가 수용하는 정의와 질서의 규칙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규칙들은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강제력을 행사하는 엘리트에게도 똑같이 구속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법의 통치는 정부와 통치자가 자의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가질 수 없음을 뜻한다. 권력을 제약하는 법의 통치가 부재할 때, 권력자의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가 이루어지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된다. 법의 통치는 정부가 불편부당하고 공정하다는 사회구성원의 인식을 통해 확인된다.
민주적인 책무성은 주인(국민)과 대리인(정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국가에서 통치자는 사적인 관심사와 이익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이익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대리인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주인에게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주인은 대리인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권력에서 퇴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현대 국가의 민주적 책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제도가 바로 선거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은 자유민주주의 원리 모두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국가재난과 국제행사 과정에서 드러난 현 정부의 무능과 책임회피는 전례 없이 높았던 국격에 대한 국민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국제적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가장 지혜롭게 대처한 국가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한순간에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부 역량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품는 나라가 되어버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압수수색과 카르텔 타파로 압축되는 윤석열 정부의 통치방식은 '법의 통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를 떠올리게 한다. 자기조직의 부조리에 한없이 관대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의 모습은 '법에 의한 통치'를 외치는 권력자의 호위 무사를 연상시킨다. 무소불위 권력기관이 되어버린 검찰이 불편부당하고 공정하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검찰발 사법 시스템의 깊어지는 불신은 게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회를 고착시키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비용을 회복 불능 수준까지 몰아간다.
작금의 사태 속에서 국민에 대한 설명과 책임지는 자세는 고사하고, 책임 전가에 전전긍긍하는 대통령실을 포함한 집권 여당의 모습은 유치하고 초라하며 안쓰럽기까지 하다. 사사건건 이미 정치적인 심판이 내려진 이전 정부를 소환하고 탓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득이 되는지 알 수 없다. 현 정부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 같은 유체 이탈의 화법에 정부 여당의 민주적 책무성의 규범은 찾아볼 수 없다. 과거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혁신의 비전과 책임 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현 정부의 향후 4년이 크게 우려되는 이유이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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